유럽연합(EU) 이사회는 2024년 3월 15일(현지시간) 기업 지속가능성 공급망 실사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CS3D; 이하 “공급망 실사지침”)을 승인하였습니다. 이후, 유럽 의회 법률위원회(Legal Affairs Committee) 역시 2024년 3월 20일(현지시간) 이를 승인하여, 유럽 의회의 입법 절차가 개시되었습니다. 승인절차를 거치면서 공급망 실사지침의 요건들이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EU 기업들과 활발히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직 · 간접적으로 공급망 실사지침의 영향을 받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에 아래에서는 향후 EU 공급망 실사지침 입법이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 및 그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I. 공급망 실사지침의 주요내용
1. 적용대상기업의 순차적 확대
기존 법안에서 EU 역내기업의 전세계 매출 기준 및 비EU 기업의 EU 내 매출 기준은 1.5억 유로였으나, 이사회가 승인한 법안은 이 기준을 상향하여 적용대상기업의 범위를 축소하였습니다.
1) 시행 3년 후 (2024년 발효할 경우 2027년 후)
- EU 역내기업의 경우, 종업원 5천명 초과 및 전세계 매출 15억 유로 초과
- 비EU 기업의 경우, EU 내 매출 15억 유로 초과
2) 시행 4년 후 (2024년 발효할 경우 2028년 후)
- EU 역내기업의 경우, 종업원 3천명 초과 및 전세계 매출 9억 유로 초과
- 비EU 기업의 경우, EU 내 매출 9억 유로 초과
3) 시행 5년 후 (2024년 발효할 경우 2029년 후)
- EU 역내기업의 경우, 종업원 1천명 초과 및 전세계 매출 4.5억 유로 초과
- 비EU 기업의 경우, EU 내 매출 4.5억 유로 초과
2. 비EU 기업의 대리인 지정
공급망 실사지침의 적용대상인 비EU 기업은 EU 감독당국의 연락창구가 될 수 있도록 EU 회원국에 설립되거나 거주하는 대리인을 지정하고 이를 감독당국에 통지해야 합니다.
3. 실사의무
적용 대상기업은 환경과 인권에 대한 실제적 또는 잠재적 부정적 영향(adverse impact)을 확인, 방지, 경감, 종결, 최소화 및 구제할 수 있는 위험기반(risk-based) 실사의무를 부담합니다. 실사 대상은 해당 기업 뿐 아니라 EU 지침에 따른 자회사의 운영, 활동사슬(chains of activities)과 연관된 직접 또는 간접적인 협력사의 운영을 포함합니다. 활동사슬은 상품 제조 또는 서비스 제공과 연관된 전방사업/업스트림(upstream) 활동을 모두 포함하지만, 후방사업 / 다운스트림 (downstream) 활동의 경우 간접적인(indirect) 협력사와 상품의 폐기 단계에서의 활동을 제외하고 상품 배포, 운송 및 보관 단계에서 직접적인 협력사 활동만 포함합니다.
실사의무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업 정책과 위험관리시스템에 실사 항목을 통합: 실사에 관한 기업의 접근법, 행동기준, 실사를 위한 관련 절차 등을 포함한 실사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 부정적 영향의 확인, 평가 및 우선순위 부여: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중대한 영향을 가진 영역을 확인하는 리스크 맵핑(risk mapping), 심층적 평가,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협력사로부터 우선적인 정보 획득 등을 실시하여야 하고, 인권과 환경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중대성 및 발생가능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여야 합니다.
- 부정적 영향에 대한 조치 및 구제: 적용대상기업은 잠재적 부정적 영향의 방지·경감, 실제적 부정적 영향의 제거·최소화, 부정적 영향에 대한 구제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한 가지 유의하실 점은, 공급망 실사지침은 적용대상기업에 대해 결과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적용대상기업은 공급망에서 확인되는 실제적 또는 잠재적 부정적 영향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부정적 영향에 따른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용대상기업은 관련 정보를 이해관계자에게 제공하고, 이해관계자들이 보복이나 보상에 대한 우려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할 의무 등을 부담합니다.
- 신고(complaint) 및 통보(notification) 절차 마련: 인권이나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 단체,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이 우려사항을 신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누구나 인권이나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관한 우려를 통보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 때 신고자나 통보자의 신분에 대한 비밀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 실사조치의 효율성에 대한 점검: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조치가 충분하고 효율적으로 시행되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여야 합니다. 이는 12개월에 최소 한 번 시행되어야 합니다.
- 공시: 적용대상기업이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면, 공급망 실사지침에 관한 사항을 매년 공시하여야 합니다. 공시에 포함될 내용에 대해서는 집행위원회가 2027년 3월 31일까지 채택할 예정입니다.
- 기록 보전: 공급망 실사지침에 관하여 취한 행동에 관한 문서를 최소한 5년 보관해야 하고, 진행 중인 사법 및 행정절차와 관련된 경우에는 그보다 장기간 보관해야 합니다.
4. 처벌 및 민사책임
적용대상기업이 환경·인권보호를 위반한 역외 기업과 거래한 사실이 적발되면 글로벌 매출을 기준으로 최대 5%의 과징금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반사실에 대해서는 기업명과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합니다(일명 “name & shame”).
민사책임에 대해서는 향후 각 회원국들의 국내법으로 구체화될 예정입니다. 다만 이번에 통과된 공급망 실사지침은 기존 법안보다 민사책임의 범위를 축소하여, 순수하게 협력사 행위에 의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민사책임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II. 향후 일정
유럽 의회는 2024년 4월 말경 공급망 실사지침안에 대한 투표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번 이사회가 승인한 실사지침안은 여러 국가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여 기존 법안보다 규제를 완화하였다는 점에서, 유럽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 졌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편, 유럽집행위원회는 향후 공급망 실사지침 준수를 지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채택할 예정이므로, 각 기업들은 향후 발간되는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공급망 실사지침 준수를 위한 사전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III. 시사점
이번 이사회는 작년 12월 유럽 의회와 이사회가 잠정 합의할 당시보다는 완화된 내용으로 법안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적용대상기업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추후 재검토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적용기준은 재개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편, 프랑스(Corporate Duty of Vigilance Law)와 독일(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은 이미 유사한 형태의 국내법을 두고 있고, 네덜란드 등 다른 EU 회원국 역시 유사한 국내법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EU가 채택한 규제는 다른 국가들이 관련 정책을 도입함에 있어 일종의 기준이나 참고할 선례(“브뤼셀 효과”)가 되므로 유럽 지역 뿐만 아니라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공급망 실사지침에 상응하는 정도의 규제가 도입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법안에서 공급망 실사지침의 직접 적용대상은 기존 법안보다 축소되었다 하더라도, 적용대상 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된 다수의 기업들이 여전히 간접적으로 실사지침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환경과 인권에 있어 실질적 또는 잠재적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기업은 애초부터 공급망 사슬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EU 역내기업에 소재, 부품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은 공급망 실사지침의 직접적인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실사지침 준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공급망 실사지침에 따른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기업은 EU 역내시장에서 퇴출 또는 활동이 제한되거나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는 반면, 기준을 준수하는 기업은 오히려 시장 진출과 확대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자신의 사업활동 뿐만 아니라 업스트림/다운스트림 공급망에 연결된 협력사의 인권과 환경에 관한 사항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위험이 발견될 경우 해당 협력사와 함께 선제적으로 개선 방안을 추진하여야 공급망에서의 경쟁력을 유지·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