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배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최근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비공식 EU 정상회의에서 EU의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를 간소화하기 위해 옴니버스(Omnibus) 방식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옴니버스 방식은 여러 관련 법령이나 규정을 하나의 법령을 통해 동시에 개정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존 법안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핵심적인 사항 이외의 중복되거나 비효율적 사항을 제외함으로써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일관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EU에서 지속가능성 공시 관련 옴니버스 방식이 거론된 배경에는 전 이탈리아 총리 엔리코 레타의 2024년 4월 보고서 ’Much More than a Market’과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의 2024년 9월 보고서 ‘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이 있습니다. 다수의 회원국 정부와 산업계에서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로 EU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경쟁력 강화방안을 제시해 왔는데, 이번 집행위원장의 옴니버스 방식 도입에 관한 언급은 EU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고 이해됩니다.
II. 옴니버스 방식으로 통합될 수 있는 현행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옴니버스 방식에 언급된 현행 규제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와 관련된 지속가능성 정보와 녹색 또는 전환 활동에 대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과 EU 택소노미(EU Taxonomy) 공시, 그리고 기업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실사 의무를 담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입니다.
CSRD는 기존의 비재무정보공시지침(NFRD)를 보완하여 2023.3월에 발효되었고, 대상기업이 공시 표준인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에 따라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공개하여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일관성 있는 기준을 토대로 기업의 ESG 이행노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입되었습니다. 회원국들은 2024년 7월까지 국내법 전환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고, 2025년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됩니다.
(참고) 2024. 11.경 기준 EU 회원국 중 8개 국가가 국내법 도입을 완료하였고, 18개 국가에서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전환 시점과 구체적인 내용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기업은 주요 소재 국가의 전환 동향과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EU 택소노미는 녹색 금융의 주요 발판으로 녹색 및 전환 기술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들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평가할 수 고안된 분류 체계입니다. 이는 경제활동이 지속가능하다고 간주되기 위한 6가지 환경 목표(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대응, 수자원의 지속가능이용, 자원 순환, 오염 방지와 통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를 비롯하여 배제기준(심각한 부정적인 환경 영향이 없을 것)과 보호기준(인권 침해 등의 활동이 없을 것)의 절차를 거쳐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며, EU의 대상 기업은 해당 정보를 공시하는 의무를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받았습니다. 2025년 현재, EU의 대상 대기업은 해당 내용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며 EU 역외 기업에 적용되는 시점은 2029년입니다.
CSDDD는 기업의 공급망에서 인권과 환경 문제를 식별하고 관리하기 위한 실사 의무를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 예방 및 해결할 의무, 실사 활동과 결과를 공개할 의무 등을 정하고 있으며, 대상 기업은 연 1회 해당 내용을 공시해야 합니다. CSRD에 입각하여 기업은 이중 중대성 평가를 거쳐 환경 및 인권 침해 요소가 중대 항목으로 선정된 경우, 해당 ESRS 주제 요건을 준수하여 CSDDD를 이행한 내용을 공시하여야 합니다.
CSRD/ESRS, EU 택소노미, 그리고 CSDDD는 각각 다른 공시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사업 모델 내 녹색 매출의 비중, 인권 영향 평가 등 중복되는 항목도 존재합니다. 공시에 대한 기업의 비효율과 복잡성 등 그간 여러 논란이 생긴 이유입니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언급한 옴니버스 방식은 위 세 규제의 내용 중 중복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을 통합하고 정리하여 중복 규제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 규제를 동시에 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됩니다. 이러한 개정을 통해 약 25% 수준의 규제 내용 감축을 이루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III. 옴니버스 방식과 시사점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옴니버스 방식의 구체적인 형식이나 내용, 추진 시기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그 함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려우나,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옴니버스 방식은 여러 다양한 법과 규제 등을 하나의 포괄적 법안이나 규제 안에 통합하는 접근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규제대상이 되는 여러 사안, 사태들을 하나의 법안이나 규제로 통합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일관되게 하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됩니다. 이에 따라 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사항이 제외된다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행정당국의 관리 부담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비록 관련된 사안들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면 법안이나 규제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고, 통합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으로 인하여 일부 내용이 모호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 개의 지속가능성 규제를 하나로 통합함에 따라 입법 논의 당시에는 예상치 못한 조항간 충돌이나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CSRD, EU 택소노미, CSDDD 등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가 도입되어 기업들이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등 단계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규제를 통합하려는 옴니버스 방식에 대한 논의가 개시된다면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옴니버스 방식은 관련 규제를 통합하여 중복과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규제가 복잡해지고 모호해지며 단기적 불확실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나아가, 2025년 2월로 예정된 독일 선거, 현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옴니버스와 같은 새로운 규제방식에 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가능할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옴니버스 방식에 관한 논의에 실질적 진전이 없거나, 최소한의 통합과 간소화에 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옴니버스 방식에 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행 규칙들이 정한 바에 따라 지속가능성 규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