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겪고 있는 여러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금융업,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진 세계 6위 규모의 경제대국입니다. 지난 7월 4일 진행된 의회 총선거에서 노동당이 411석을 획득함으로써 121석을 얻는 것에 그친 보수당의 14년 집권을 끝내고, 노동당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대표가 총리에 취임하였습니다. 영국 국내 정치 지형의 이러한 변화는,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프랑스 총선, 이란 대선 등과 함께 향후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영국의 14년 만의 정권 교체가 우리 기업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함의를 살펴보겠습니다.
I. 외교정책 – 협력의 강조, 진보적 현실주의(Progressive Realism)
노동당은 보수당의 기존 ‘Global Britain’이라는 슬로건을 대체하여 ‘Britain Reconnected ’를 제시합니다. 이는 연대와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국제기구와 제도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국 외무장관으로 취임한 데이비드 라미(David Lammy)가 지난 4월 발표한 기고문 에서 진보적 현실주의(Progressive Realism)가 영국 외교정책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가 주창한 진보적 현실주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신보수주의와 달리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제 협력이 국가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고 보고 국제협력과 국제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미 장관은 사회의 진보를 달성하기 위해 현실주의적 수단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진보적 현실주의라고 설명합니다. 단순히 강대국이 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 균형이나 국제사회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후변화, 민주주의, 국제사회의 경제 발전 등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힘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NATO 및 미국과의 안보 협력 관계를 계속 중시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지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아태 지역에 대한 전략적 관심을 유지하면서, AUKUS는 물론 일본,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서도 노력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중국에 대해서는 일종의 정경 분리 정책을 추구하면서, decoupling 보다는 derisking에 가까운 접근법을 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영국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될지, 또 미국의 11월 대선 결과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II. 통상
노동당의 주요 통상정책 중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EU와 관계를 개선하여 EU와의 무역장벽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당은 EU에 재가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히고 있으나, EU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무역장벽을 낮추며 협력 분야를 넓히기 위하여 지난 2021년 EU와 체결한 무역협정(Trade and Cooperation Agreement, TCA)을 재협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노동당은 WTO, CPTPP 등을 통한 협력, 통상관계 증진, 무역규칙과 통상협정의 현대화 등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WTO의 개혁에 보다 힘을 실어주면서 글로벌 통상규범의 필요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한편, 기존 보수당이 추진하던 영국과 인도 간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에 따라 양국간 교역이 증가하고, 특히 인도 출신 인력이 영국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동당은 인도와 전략적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보수당이 추진하던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노동당 집권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III. 경제·산업정책과 근로정책
노동당의 경제·산업정책은 전반적으로 보수당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법인세 등의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보수당에 비하여 노동당은 기존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노동당의 집권에 따라 정치적 환경이 안정된다면 영국의 경제와 주식시장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노동당은 향후 5년간 140만 채의 신규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는데, 이로 인해 주택 건설 부문이 큰 수혜를 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또한, 노동당은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정책(해고 제한, 수당 인상 등)을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국에 진출하여 직접 고용하고 있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노무관리에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IV. 기후 및 에너지정책
스타머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기후 및 에너지에 큰 변화를 줄 것이라고 강조하였고, 2030년까지 넷제로(net-zero)를 달성하고 청정에너지 분야 초강대국(clean energy superpower)이 되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선거 후 노동당은 환경단체 출신인 크리스 스타크(Chris Stark)를 청정에너지에 관한 임무통제센터(mission control centre)의 센터장으로 임명하면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북해에서의 석유, 가스 탐사 등과 같은 사업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지난 보수당 정권에서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존의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늦추기로 하였으나, 이번 노동당 정권에서 이를 기존의 2030년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노동당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배출권거래제(ETS)와의 정합성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에 수입되는 물품 등에 부과되는 소위 탄소세(carbon tax)가 증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