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의회(Parliament)와 이사회(Council)는 현지 시각 2024. 3. 5. 유럽연합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의 수입이나 수출을 유럽연합 역내에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잠정 합의하였습니다. 이 합의가 향후 정식 채택된다면 우리 기업은 강제노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제조된 상품 등을 유럽연합 지역으로 수출할 수 없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하 위 합의의 경과와 향후 일정, 합의의 내용 및 시사점을 순서대로 살펴봅니다.
I. 경과와 향후 일정
유럽연합 집행이사회(Commission)는 2022. 2. 23. 국제연합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UN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에 부합하는 노동조건이 도입될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decent work)를 세계적으로 증진하기 위한 포괄적 계획을 제안하였습니다. 그 계획 중 하나가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유럽연합 역내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 유럽연합 의회와 이사회는 2024. 3. 5.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2천 8백만명이 강제노동의 상황에 있다고 강조하며,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유럽연합 역내에 있지 못하도록 이를 금지하다는 점에 잠정 합의하였습니다.
최근 여러 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의회와 이사회의 잠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었으므로, 이번 합의가 최종적인 합의에 이를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유럽연합 내 강제노동 금지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최종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됩니다.
II. 합의의 내용
1. 적용범위
이번에 잠정 합의된 규제는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유럽연합 역내로 수입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강제노동과 관련된 부품을 활용하여 유럽연합 역내에서 생산된 상품이 유통 및 수출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역외에서 강제노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제작된 상품 뿐만 아니라 부품 역시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모든 기업과 산업을 대상으로 하고,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에 적용됩니다. 큰 규모의 기업에 적용되는 디지털시장법 등 최근 유럽연합 규제와 달리 이번 잠정 합의는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으므로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부과한 강제노동 뿐만 아니라 사기업이 부과한 것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2. 강제노동 여부의 조사 및 결정
이처럼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에 적용되므로 강제노동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잠정 합의는 규제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위험기반 접근방식(risk-based approach)을 채택하여 ① 의심되는 강제노동의 규모와 심각성, ② 유럽연합 역내에 있게 되는 상품의 규모, ③ 강제노동에 따라 만들어진 부품이 최종 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율, ④ 기업의 공급망에서 강제노동 위험과의 근접성 및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leverage)이 있는지 등의 기준에 따릅니다. 보다 자세한 기준은 추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가 발표할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규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연합 이외 국가에서 강제노동의 의심이 있다면 유럽연합 집행이사회가 조사 및 결정 권한을 가지고, 만약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그러한 의심이 있다면 해당 국가의 관계당국(competent authority)이 조사 및 결정권한을 가집니다. 즉, 집행이사회나 개별 국가의 관계당국이 위와 같은 기준 따라 강제노동 금지 위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조사를 개시하고 이 기준에 따라 조사 결과 최종결정이 이루어지면 집행이사회나 개별 국가의 관계당국은 해당 상품의 EU 시장 내 회수, 수출입 금지 내지 몰수, 처분 등을 명할 수 있습니다.
3. 발효시기
잠정 합의가 Directive로 채택되면 이를 집행하기 위하여 회원국의 후속 입법 조치가 필요하나, 규제의 효과적인 집행과 준수를 위하여 회원국에 직접 효력이 발생하는 Regulation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후 유럽연합 의회와 이사회가 최종 합의에 이른다면 관보에 게재된 날로부터 36개월 후부터 그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III. 시사점
규제가 시행된다면 유럽연합 역외에서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 그리고 유럽연합 역내에서 상품이 생산된다 하더라도 그에 사용되는 부품이 역외에서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면, 그 상품들은 유럽연합 역내에서 유통이 금지됩니다. 그러므로 유럽의 제조업자들은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부품을 활용하여 상품을 만들지 않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유럽연합 역외에서 상품을 생산하여 유럽 지역으로 수출하는 제조기업 뿐만 아니라 부품을 유럽의 제조업자에게 판매하는 우리 기업 역시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번 유럽연합의 규제는 단순히 관세 등 재정적 부담을 부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품의 수입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유럽으로의 수출 사업 자체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번 규제에 따라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지역은 중국의 신장위구르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지만, 이번 합의가 최종 채택된다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전세계적인 강제노동 사례를 조사할 수 있으므로 신장위구르 이외 지역에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에 상품이나 부품을 수출하고자 하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공장을 설립하고자 하거나 이미 운영하고 있다면, 강제노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지역을 피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충분한 실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앞으로도 전세계적인 노동, 인권, 환경 등 공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하여 이러한 가치에 반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규제하는 방식의 통상 및 공급망 정책을 계속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의 이런 규제에 부합하기 위하여 우리 기업의 부담이 한층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는 우리 기업에게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의 엄격한 규제는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잡는 경향이 있어(소위 “브뤼셀 효과”) 우리 기업이 유럽연합이 중시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를 준수하기 쉽지 않은 다른 국가(대체로 개발도상국)의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사업을 하기에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