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L은 2023. 6. 28. ‘대형 화재사고에서 민·형사상 대응방법’을 주제로 한 웨비나를 개최하였습니다.
화재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의 존부와 범위는 화재발생 원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므로, 이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하여 현장이 소훼된 상황에서 화재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수사 및 소송진행과정에서 화재 발생 장소와 원인이 치열하게 다투어지며, 관련 소송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위 웨비나에서 형사상 대응방법에 관하여는 화재사고 발생 시 적용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관한 내용 및 수행사례를 발표하였고, 민사상 대응방법에서는 BKL의 실제 수행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위 웨비나의 민사상 대응방법에서 소개되었던 사례 중 2013년에 발생한 대형 전산센터 화재사고의 관련자들 사이에서 진행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사고 발생 10년 만인 최근 확정되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 화재는 A가 소유, 운영하는 전산센터 비상발전기 연도(煙道)에서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전산센터 외벽과 서버 등이 설치된 2개 층이 소훼되었습니다. A는 화재 발생 약 1년 전 전산센터 리모델링 공사를 하였는데, 리모델링 공사에는 기존 비상발전기의 연도를 확장하는 공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A는 B에게 리모델링 공사 전체를 도급주었고, B는 C에게 비상발전기 설치 및 연도연장 공사를 하도급하였으며, C는 D에게 연도 연장공사를 순차 재하도급하였습니다.
위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후 약 1년간 A는 B가 제공한 매뉴얼에 따라 수차례 비상발전기 시험운전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리모델링 공사 완공 후 약 1년 뒤 A가 처음으로 전력 생산 등 실제 용도대로 비상발전기를 가동하자, 약 4시간 30분 뒤에 연장된 연도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큰 손해를 입은 A는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는 한편,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은 손해를 배상받기 위하여 전산센터 리모델링공사를 담당한 B, C, D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한편 전산센터 리모델링공사, 연도연장공사를 담당한 B의 직원, D의 직원이 실화죄로 기소되었지만, 제1심법원은 위 사람들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 결론이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그대로 유지되어 B와 D 직원의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민사사건 제1심판결은 위 형사사건 대법원판결 확정 이후 선고되었는데, 화재 원인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고인 A가 부담하는데, 원고가 주장하는 화재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면서, A의 불법행위 책임, 도급인 또는 사용자책임, 하자담보책임, 채무불이행책임, 제조물책임법상의 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BKL은 위 민사사건의 항소심부터 A를 대리하였습니다. 관련 형사사건에서 공사 담당자들인 B, D 직원들의 무죄가 확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1심판결도 A가 주장한 화재발생원인을 모두 배척하며 A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도 제1심판결과 동일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으므로, 새로운 시각에서 쟁점을 부각하고 추가 증거방법이 필요하였습니다.
BKL은 ① 제1심에서의 청구원인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판단하여 항소심에서는 청구원인을 채무불이행 책임, 제조물책임, 불법행위책임으로 간단히 정리하여 주장하였고, ② 관련 형사사건 및 제1심이 배척한 화재 발생 원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증거방법(논문 등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화재발생 원인 설명, 연도모형 제작 후 실증실험, 전문가를 통한 열역학 검토, 용접 모형 제작 등)을 추가로 제출하며 화재 원인을 증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항소심은 B, C, D가 시공한 연도가 ㄱ자로 꺾이는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연도를 통과하는 고온, 고압의 배기가스 열에너지가 발화 열원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D가 시공한 연도관에 조립 불량 또는 용접 불량으로 인하여 다수의 단차 또는 틈새하자가 존재하였고, B가 시공한 연도하우징(연도를 둘러싸는 박스형태의 구조물) 마감공사에 하자(연도관과 가연물 사이에 건축법상의 이격거리 미확보)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항소심은 B의 채무불이행 책임(연도하우징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한 것에 따른 책임), D의 불법행위 책임(연도관들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한 것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C에 대하여는 ① 재하수급인 D의 불법행위에 대한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책임과 ② 건설산업기본법 제32조 제1항(하수급인은 하도급받은 건설공사의 시공에 관하여는 발주자에 대하여 수급인과 같은 의무를 진다)에 따라 발주자인 원고에 대하여 B와 동일한 계약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하여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위 판결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화재에 대한 B, D 직원의 형사책임을 배척하였음에도 B, D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하였다는 점과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부분(연도 및 연도하우징)의 공사를 수행하지는 않은 C에게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 건설산업기본법 제32조 제1항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아울러 BKL은 화재의 원인이 B, C, D에게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화재발생 원인 증명을 시도하였는데, 법원이 이를 기초로 A가 주장하는 화재발생 원인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