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개관
영국 High Court of Justice (이하 “영국 High Court”)는 2023. 8. 2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하여 EU의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 당사자가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1] 계약 관련 분쟁(G 대 R 사건)과 관련하여 당사자 모두가 참여한 실체적 심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러시아 법원의 소송절차에 대하여 잠정적 소송금지명령(anti-suit injunction)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2023. 9. 22. 양 당사자가 모두 참여한 실체적 심리에서는 최종 소송금지명령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반면 위 G 대 R 사건에서 잠정적 소송금지명령이 허가되기 3일 전인 2023. 8. 21. 영국 High Court는 러시아 당사자가 관여된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이하 “ICC”) 중재사건과 관련하여 러시아 법원에서 진행되던 절차에 대한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원고가 항소하자 Court of Appeal(항소법원)은 2023. 9. 7. 소송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SQD 대 QYP 사건).
이처럼 영국 법원은 최근 소송금지명령과 관련하여 다른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영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법원이 관할을 가지거나 중재지가 외국인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할 수 있는지와 관련하여 문제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영국 법원의 결정들을 분석하고 그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II. SQD 대 QYP 사건
1. 영국 High Court의 2023. 8. 21.자 소송금지명령 기각결정
영국 High Court의 Bright 판사는 2023. 8. 21. SQD와 QYP 간 분쟁과 관련하여 QYP가 자국인 러시아 법원에 제기한 소송절차를 금지하여 달라는 SQD의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2]
SQD와 QYP 사이의 분쟁은 해외 프로젝트에 관한 것으로 프로젝트 관련 계약상 분쟁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ICC 중재를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3] 프로젝트 진행이 중단되자 QYP는 프로젝트 관련 계약을 종료(terminate)하고 계약상 대금 지급을 요청하였으나 SQD는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다투었습니다.[4]
그러자 QYP는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ICC 중재에 QYP가 직접 혹은 대리인을 통해 참석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의 심리가 공정할지 의문이 있으며, 자국 법원인 러시아 법원을 통해서만 유효하게 권리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법원에 대금 지급 청구 및 SQD가 보유한 주식의 가압류를 신청하였습니다.[5]
이후 SQD는 계약의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를 제기하면서,[6] 영국 중재법 Section 44,[7] 예비적으로는 1981년 영국 상급법원법 (UK Senior Courts Act 1981) Section 37[8]에 따라 영국 High Court에 중재판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QYP에 대하여 소송금지 및 집행금지 잠정처분을 하여 달라고 신청하였습니다.[9]
Bright 판사는 중재합의가 존재하고, QYP의 러시아 법원에서의 소송이 중재합의 및 계약 위반일 가능성이 높으며,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ICC 중재가 QYP에게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납득할 수 없으므로, 만약 영국이 중재지였다면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하였습니다.[10]
그러나 Bright 판사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영국 법원은 본건에 대한 적절한 관할(proper forum)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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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분쟁의 중재지가 프랑스 파리이므로 소송금지명령 발령에 주의하여야 함.[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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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법원에서 외국을 중재지로 하는 중재와 관련하여 소송금지명령이 내려진 바 없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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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중재법 제정 이전 중재 자문위원회(Departmental Advisory Committee on Arbitr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법원이 타국을 중재지로 하는 중재에 관하여 잠정처분을 하여 중재지 법원과의 ‘갈등’ 이나 ‘충돌’을 유발할 경우 이와 같은 처분은 적절하지 않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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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법원에서는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지 않음에도[14] 영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내릴 경우 법정지법인 프랑스법과 갈등이나 충돌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음.[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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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당사자들의 객관적인 의도 또한 고려하여야 하는데, 당사자들이 파리를 중재지로 선택하면서 프랑스 법원에서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려하였을 것이라고 보아야 함.[16]
2. Court of Appeal의 소송금지명령 발령
Court of Appeal은 2023. 9. 7. 다음과 같은 이유로 Bright 판사가 내린 소송금지명령 기각결정에 대한 항소를 허가하고, 잠정적 소송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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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영국 법원의 소송금지명령을 승인할 것이므로, 영국은 잠정적 소송금지명령 신청에 대하여 판단할 적절한 관할(appropriate forum)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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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의 합의, 특히 중재합의를 통해 법원에서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묵시적 합의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영국법의 방침(policy)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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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영국법이 준거법인 중재합의의 당사자이고, 러시아 법원에 소를 제기함으로써 위 중재합의를 위반하였음이 일응 소명되었음.
III. G v R 사건
1. 영국 High Court의 2023. 8. 24.자 소송금지명령
영국 High Court의 Knowles 판사는 2023. 8. 24. Bright 판사의 위 2023. 8. 21.자 소송금지명령 기각결정과는 달리 유사한 사안에서 소송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
Knowles 판사는 소송금지명령의 기초가 된 분쟁에 대하여 당사자 사이에 파리를 중재지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ICC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는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18] 소송금지명령의 피고(defendant)는 러시아 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습니다.[19]
Knowles 판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소송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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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금지명령 신청은 한달 내로 예정된 당사자 간 실체적 심리까지로 한정되고, 소송금지명령의 논거에 대하여 후속 심리에서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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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영국 상급법원법 (UK Senior Courts Act 1981) Section 37에 따라 영국 High Court의 관할이 있음.[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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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법원은 중재합의를 이유로 하는 소송금지명령을 허가하여 주지는 않으나,[22] 이는 영국 High Court가 재량권 행사에 고려할 요소일 뿐 이로 인해 관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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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가능성이 있고, 잠정처분을 거부할 타당하거나 확고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잠정처분을 허가하는 것이 정당하고 용이하여 잠정적인(interim) 소송금지명령의 모든 요건이 만족되었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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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D 대 QYP 사건과 달리, 본 사건에서 제시된 증거에 따르면 영국 법원과 프랑스 법원은 당사자간 합의가 존중되도록 하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음.[25] 따라서 영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내리더라도 이는 국제예양(comity)에 부합하고, 양국 법원 간의 ‘차이점’, ‘긴장’ 혹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
2. 2023. 9. 22.자 소송금지명령 기각결정
영국 High Court의 Sir Nigel Teare 판사는 양 당사자 모두가 참여한 실체 심리를 진행하였습니다. Sir Nigel Teare 판사는 2023. 9. 22.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소송금지명령 신청에 대하여 영국 High Court의 관할이 없다고 판단하고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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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서 중재합의의 준거법은 영국법이 아니라 프랑스법임.[27]
- Enka 대 Chubb 사건에서 영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통상적으로는 계약의 준거법이 중재합의의 준거법으로 추정되나, 중재지법상 중재합의에 대하여 중재지법이 적용되는 경우 이와 같은 추정이 깨짐.[28]
- 중재지법인 프랑스법에 따르면 프랑스 법원은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프랑스법의 일부로써 중재에 적용되는 실체적 국제법’으로 판단할 것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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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법원은 소송금지명령 신청에 대한 적절한 관할(proper forum)이 아님.[30]
- 본 사건과 영국과의 연결점은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라는 것에 불과함.[31]
- 이 사건에서 영국법에 대한 다툼이 있는 것도 아님.[32]
- 프랑스 법원은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할 수 없으나, 중재합의 위반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가능할 것임. 따라서 프랑스 법원에서 실체적 정의 실현이 불가능하지 않음.[33]
-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국 법원이 실체적 정의를 실현할 유일한 관할이 되는 것도 아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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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D 대 QYP 사건에서 Court of Appeal이 소송금지명령을 하였으나 피고의 변론 없이 원고만 항소한 상태에서 소송금지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그 영향력은 제한적임.[35]
IV. 시사점
영국 법원은 중재지가 영국인 국제중재와 관하여 소송금지명령을 내린 바 있으나 영국 외 국가가 중재지인 사건에서는 소송금지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36] 영국 High Court는 2023. 8. 24. 프랑스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국제중재가 관련된 G 대 R 사건에서 잠정적 소송금지명령을 내려 종전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였으나, 2023. 9. 22. 실체 심리를 거쳐 최종적으로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 Court of Appeal은 2023. 9. 7. SQD v QYP 사건에서 프랑스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중재와 관련하여 잠정적 소송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프랑스 파리를 중재지로 하는 중재합의가 문제된 두 사안에서 영국 법원은 소송금지명령의 가능성에 대하여 반대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영국을 중재지로 하는 중재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 당사자가 어느 국가의 법원에 소를 제기한다면, 타방 당사자는 영국 법원에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아닌 제3국을 중재지로 하는 중재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 당사자가 특정한 국가의 국내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을 경우, 소송금지명령에 관한 영국 법원의 입장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결론을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G v R 사건에서 소송금지명령을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중재합의의 준거법이 영국법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중재합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라면 설사 중재지가 외국이라 하더라도 소송금지명령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상 또는 별도의 중재합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국내법원에 소를 제기한다면, 중재합의의 준거법 등 여러 사정을 검토하여 영국 법원에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위 소송금지명령 결정은 ‘G 대 R 사건’이라고 익명 처리되어 공개되었으나, 러시아 법원 기록에 따르면 독일 은행인 UniCredit Bank AG와 러시아 국영회사 가스프롬(Gazprom)이 부분 소유한 RusChemAlliance 간의 분쟁에 관한 심리가 2023. 9. 27.로 예정되어 있었고, 실체적 심리 후 공개된 판결문에서 원고가 독일법에 따라 설립된 회사, 피고가 러시아법에 따라 설립된 회사임이 공개된 사실을 고려하면 UniCredit Bank AG와 RusChemAlliance가 G 대 R 사건의 당사자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러시아 법원 사건검색, https://kad.arbitr.ru/card/63751406-8c80-4adc-aa30-5e3c325e96dd, 2023. 10. 3. 최종 확인).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104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1, 17(i)-(ii)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4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5-7문단.
- G v R [2023] EWHC No. CL-2023-000498, 8문단.
- (1) Unless otherwise agreed by the parties, the court has for the purposes of and in relation to arbitral proceedings the same power of making orders about the matters listed below as it has for the purposes of and in relation to legal proceedings.
(2) Those matters are— […]
(e) the granting of an interim injunction or the appointment of a receiver. […]
- UK Senior Courts Act 1981, Section 37(1)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High Court may by order (whether interlocutory or final) grant an injunction or appoint a receiver in all cases in which it appears to the court to be just and convenient to do so.”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11-13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17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26, 35-42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35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43-45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80-81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95, 98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96-97문단.
- Essex Court Chambers, “Court of Appeal Grants Anti-Suit Injunction to Enforce a Foreign-Seat Arbitration Agreement”, https://essexcourt.com/court-of-appeal-grants-anti-suit-injunction-to-enforce-a-foreign-seat-arbitration-agreement/, 2023. 10. 4. 최종 확인,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45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2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4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1, 4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3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3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7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6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8. 24., 9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48-50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25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10-14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15-25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9, 26-45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29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31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9, 35-39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40-44문단.
- G v R [2023] EWHC 2365 (Comm), 2023. 9. 22., 45문단.
- SQD v QYP [2023] EWHC 2145 (Comm), 35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