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하나의 재평가가 종료되었지만 또다른 재평가 추진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 제도(이하 “경평면제제도”)의 적용 범위가 변경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또 한 번의 개정이 예상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행 중인 경평면제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이 10월에 종료될 예정인데, 경평면제제도의 적용과 사후관리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I.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의 시대
1. 기준요건 재평가 종료, 또 다른 재평가 시작?
정부는 2020. 6. 30. 기준요건 충족 여부에 따라 약제 상한금액을 재평가(이하 “기준요건 재평가”)하는 계획을 공고하였습니다. 정부는 각 제약회사들로부터 기준요건 충족 여부 입증 자료를 제출 받아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그 검토 결과를 최종 확정한 후, 2023. 9. 1. 각 약제 품목별 인하된 상한금액을 고시하였습니다. 약 3년에 걸쳐 진행된 기준요건 재평가로 인해 7,677개 품목의 약제 상한금액이 인하되고, 이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은 연간 약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기준요건 재평가가 종료되었지만 제약업계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외국약가 참조기준 등을 적용한 약가 재평가(이하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 때문입니다.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는 2023년 제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2023. 2. 28.)에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보고된 내용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된 상태는 아니지만, 정부가 평가대상, 평가기준, 시행시기 등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하여 제약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외국 약가를 기준으로 약제 상한금액을 인하한 적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2007년 의약품 선별등재제도(Positive List System)를 도입하기 전 외국 약가 대비 국내 약제 상한금액의 수준을 일정하게 관리하고자 외국 7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약가의 조정평균가를 산출하여 그 금액을 기준으로 약제 상한금액을 인하하였었습니다.
2023년 제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에는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의 대상이 ‘특허만료 만성질환 약제 등’으로 간략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특허가 만료되었지만 제네릭이 출시되지 않아 아직까지 비교적 높은 약가를 유지하고 있는 약제와, 제네릭이 등재되어 53.55% 수준으로 약제 상한금액이 인하되었지만 외국 약가와 비교하였을 때 여전히 약제 상한금액이 높다고 판단되는 만성질환 약제가 모두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 대상이 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평가기준과 관련하여서는 현재 신약 등재 시 참조 대상이 되는 외국 8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약가의 조정평균가가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정부가 재정절감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른 평가기준을 설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발표 및 시행시기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평가대상, 평가기준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기 위해서는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가 건강보험 재정은 물론 제약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본격적인 시행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 소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2. 시사점
외국에서는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약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해당 의약품의 시장 점유율이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어 제네릭이 등재되더라도 약제 상한금액이 종전 금액의 53.55% 수준으로 유지되고 해당 의약품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여전히 큰 경향을 보입니다.
정부가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를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국내 의약품 시장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들어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 대상에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뿐만 아니라 동일 성분 제네릭도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제약회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달라지겠으나, 기본적으로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는 국내외 제약회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2019년에도 외국 약가와 비교하여 약제 상한금액을 인하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당시 정부 시뮬레이션안에 따르면 재정 절감액이 예상보다 크게 나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제약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평가대상, 평가기준, 시행시기 등을 정하는 과정에서 업계와 충분히 소통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약업계로서는 이미 기준요건 재평가로 인해 연간 약 3,000억 원의 재정절감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까지 추진되는 것은 과도하다는 점을 정부에 명확히 전달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기준요건 재평가의 경우 1차 평가 결과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1,300여 품목 중 약 850개 품목(65%)과 관련된 이의신청이 수용되어 해당 품목 상한금액이 유지된 바 있습니다. 이의신청 결과 많은 약제가 약제 상한금액 인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16,000개가 넘는 제품을 한꺼번에 검토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선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약제를 대상으로 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그 품목 수가 약 7,000개에 달한다는 점에서 실무상 혼선을 겪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외국 8개국 약가를 조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약회사로서는 정부에 외국 약가 산출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검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실제로 외국 약가 비교 재평가를 통해 약제 상한금액이 인하되는 경우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II. 경평면제제도 개선방안
1. 국회토론회를 통해 본 경평면제제도의 미래
2015년에 신약 보장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경평면제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2023년 3월에 시작하였고, 지난 8월에는 경평면제제도 개선방안과 관련한 국회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는 맡았던 경상대학교 배은영 교수는 경평면제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으며, 경평면제로 등재된 약은 데이터 수집을 통해 사후에 약가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반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보라미 본부장은 토론자로 참석하여 경평면제제도로 인해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으며, 혈액종양내과 교수이자 암질환심의위원회 위원인 문영철 교수는 경평면제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너무 엄격하여 신약이 신속하게 등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했습니다.
2. 시사점
기존 약제 대비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된 약은 ①경제성평가를 통해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는 방법과 ②경평면제제도를 통해 등재하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경평면제제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경제성평가를 통해서만 적정한 약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경평면제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에 있지만, 국회토론회에서 경평면제제도의 필요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배은영 교수가 해당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경평면제제도를 통한 신약 등재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으며, 사후관리가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회사로서는 정부에 경제성평가 관련 제도 및 검토 과정에서의 미흡한 점을 개선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경제성평가 자료를 검토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 단축, 불확실성 해소의 척도를 보다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 등을 제안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