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영국 「중재법(Arbitration Act) 2025」의 공포 배경
영국 법무부는 중재지가 영국인 중재에 적용되는 영국 「중재법(Arbitration Act) 1996」(이하 “「중재법 1996」”)의 25주년을 맞이하여 2021년부터 법령의 재정비를 준비하였고, 이에 법률위원회(Law Commission)1가 개정안을 제시하여 2023. 11. 21. 영국 상원에 ‘Arbitration Bill [HL]’의 제명으로 제출되었습니다.
해당 법안은 2024년 중순경 공포될 예정이었으나, 2024년 7월 영국의 조기 총선으로 인하여 다소 지연되었고, 최근 2025. 2. 24. 국왕의 승인(Royal Assent)을 받아 마침내 「중재법(Arbitration Act) 2025」(이하 “「중재법 2025」”)로 공포되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중재법 2025」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II. 주요내용
1. 「중재법 2025」의 적용 범위
「중재법 2025」는 2025. 2. 24. 국왕의 승인을 받아 공포되었고, 이후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 지정하는 날에 발효될 예정입니다.2 발효일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으나 가까운 시일 내에 지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발효일 이전에 개시된 중재 절차, 그와 관련된 법원 절차(예를 들어, 중재판정의 집행절차) 및 발효일 이전에 개시된 법원 절차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3
2. 중재합의의 준거법 규정 신설
「중재법 2025」는 ‘당사자가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 중재지법(the law of the seat)이 준거법이 된다’는 조항을 신설하였습니다.4
당사자가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 일반적으로 중재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와 중재합의 또는 중재조항을 포함한 주된 계약의 준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합니다. 영국 판례는 원칙적으로 주된 계약의 준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Enka v. Chubb5), 위 조항 신설을 통하여 ‘중재지법’이 적용된다고 정리되었습니다.
중재합의의 준거법은 중재합의의 유효성, 범위 등을 규율하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에 대하여 명시하지 않는 경우 관할별로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으므로, 당사자들은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명확히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시사합니다.
3. 중재인의 고지의무 법제화
「중재법 2024」는 중재인의 고지의무를 명문의 법령으로 법제화하는 조항을 신설하였습니다.6 이에 따라, 중재인은 공정성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을 살 만한 사유가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지체없이 이를 당사자들에게 고지하여야 합니다.
기존에 영국 법원 판례7에 의하여 부여되고 있던 중재인의 고지의무를 명문화한 조항입니다. 다만, 고지의무의 구체적인 대상 및 범위 등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는바, 이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4. 중재인 면책 강화
「중재법 2025」는 중재인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여, 중재인은 (i) 해의(bad faith)에 기한 것이 아닌 한 해임신청으로 인한 비용으로부터 면책되고,8 (ii) 불합리한 경우(unreasonable)가 아닌 한 사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면책되는9 내용으로 개정되었습니다.
5. 간이 판정 권한 도입
「중재법 2025」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중재판정부는 당사자들의 특정 주장이 인용될 실질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no real prospect of success), 해당 주장에 대하여 간이 판정(an award on a summary basis)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였습니다.10
중재판정부에 간이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분쟁 초기에 인용가능성이 없는 주장을 배제하고, 그러한 주장으로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전략 역시 방지하여 중재절차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도모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스톡홀름 상업회의소 중재기관(SCC) 등 타 국제중재기관과 발맞추어 국제중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였다고 평가됩니다.
6. 긴급중재인의 권한 명확화
「중재법 2025」는 중재 당사자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법원을 통해 집행이 가능한 강제 명령(peremptory order), 임시적 처분 등 일반 중재인의 권한이 긴급중재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개정되었습니다.11 긴급중재란,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긴급한 보전처분의 필요가 있는 경우 권리구제의 공백을 막기 위하여 긴급중재인을 선임하여 긴급절차를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7. 법원의 임시적 처분의 범위 명확화
「중재법 2025」는 법원의 임시적 처분이 중재절차에서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예를 들어 관련 증거를 보유한 제3자나 관련 자금을 보유하는 은행 등에 대해서도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습니다.12 영국 법원 절차에서의 임시적 처분의 범위와 동일하게 개정되었다고 평가됩니다.
8. 중재판정 취소절차 개선
「중재법 2025」는 동일한 쟁점으로 인하여 당사자들의 시간과 비용이 중복하여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원칙적으로는 관할위반을 이유로 한 중재판정 취소소송 절차에서는 새로운 취소사유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증거조사도 다시 하지 않도록 규정합니다.13
다만, 당사자가 중재절차 당시에 합리적인 노력(reasonable diligence)을 다하였더라도 그 증거나 주장을 제출할 수 없었을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므로,14 예외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은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III. 시사점
「중재법 2025」는 기존 「중재법 1996」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지는 않지만, 30년 가량 유지되어 오던 법률을 개정하고 공정한 분쟁 해결 도모, 불필요한 지연 및 비용 절감에 관한 조항들을 정비함으로써 영국 중재가 보다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절차로 인정받기를 목적으로 한다고 평가됩니다. 또한, 그동안 영국 판례 등에 의하여 논의되어 오던 법적 쟁점들을 명확히 정리함으로써, 영국 중재를 선택하는 당사자들에게 보다 높은 예측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기대됩니다. 개정안은 영국 의회의 양원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고, 업계 전반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국제중재지로서 시장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고, 전세계 다수 기업들이 영국(런던) 중재를 중재지로 선택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영국 중재법의 개정 내용과 시사점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영국의 기존 법규를 재검토하고 개정을 제안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독립 기구입니다.
2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17 subsection (2).
3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17 subsection (4).
4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1.
5 Enka Insaat Ve Sanayi AS v. OOO Insurance Company Chubb [2020] UKSC 38.
6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2.
7 Halliburton Company v Chubb Bermuda Insurance Ltd [2020] UKSC 48.
8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3.
9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4.
10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7.
11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8.
12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9.
13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11.
14 Arbitration Act 2025, section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