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판결의 결론과 원고들의 청구 내용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공공기관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과 공공기관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 존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하고 이를 전제로 한 원고들의 고용의사표시, 임금차액 등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5. 9. 선고 2022가합33272 판결).
공공기관인 피고 회사는 냉동설비 및 그 부대시설의 운영 및 유지관리 등의 업무를 A사에게 위탁하여 오던 중 2019. 1. 1.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의 일환으로 자회사인 B사를 설립하고, A사 근로자들과의 협의절차 등을 거쳐 해당 근로자들을 B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2019. 1. 1.부터 현재까지 B사에 같은 업무를 위탁하여 오고 있습니다.
B사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 중 일부는 A사 소속으로 근무하다가 B사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나머지는 B사 설립 이후 B사에 입사하였습니다.
II. 쟁점과 법원의 판단
1. 원고들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함으로써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판단
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피고 회사가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방식으로 (B사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A사에 소속되어 업무를 수행하였던) 원고들에 대한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의 고용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피고 회사는 근로자 대표단을 포함한 노사합의기구를 구성하고 노사협의 결과에 따라 자회사인 B사를 설립하였으며, 용역근로자들을 모두 B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였고, 원고들 역시 위와 같은 경위를 모두 인지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파견법상의 고용의무 이행에 갈음하여 시행된 정규직 전환 절차를 통하여 B사의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되었으므로, 피고 회사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위 원고들에 대한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
1) A사 근무기간
법원은 원고들이 위 기간 동안 자신들이 피고로부터 구속력 있는 지시·명령을 받았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제출한 각종 위탁관리 계약서, 위탁관리 협약서, 지침 등만으로는 원고들이 A사에 소속되었던 기간 동안 피고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B사 근무기간
법원은 원고들이 A사에 소속된 기간 동안에는 물론, B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업무를 수행한 기간 동안에도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의 실질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조건인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은 근로자들의 노무급부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지휘·명령이어야 하는데, 이 사건 사안에서는 그와 같은 요소가 발견되지 아니하므로 피고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피고 회사가 B사에 각종 지침이나 규정 등을 교부한 사실, 피고 회사가 피고 회사 소속 직원을 현장에 파견하였던 사실 등이 인정되나, 피고 회사가 이를 통하여 원고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원고들이 피고 회사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업무수행장소 내에서 함께 근무하더라도 피고 회사의 근로자는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고 원고들은 시설 내 비축물건에 대한 보관·품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기에 각자의 업무가 구별되는 점, 피고 회사 직원이 원고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은 단지 업무 수행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점, 원고들과 피고 회사 소속 근로자는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상호 대체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점 등이 위 판단의 근거로 고려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법원은 B사 근로자 선발의 권한은 피고 회사가 아닌 B사가 가지고 있는 점, 피고 회사가 B사의 구체적인 업무시간 배치에는 관여하지 않은 점,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 대한 인사·노무상의 조치와 관련된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점, B사가 독자적으로 취업규칙을 마련하여 직원의 근무·휴게시간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한 점을 들어 근로자 선발, 교육 및 훈련, 근무태도 점검 등의 결정 권한 주체 역시 피고가 아닌 B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B사 및 원고들이 수행할 업무의 내용은 피고 회사와의 협약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고, B사는 이를 수행할 근로자를 모집하면서 일정 수준의 자격증(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삼은 점 등으로 보아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는 명확히 특정·구별되고 일정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B사는 자신의 명의로 사무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업무수행에 필요한 허가증을 보유함으로써 상당한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등 독자적인 실체가 인정되는 업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III. 의의 및 시사점
이번 판결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의 일환으로 수급업체의 근로자들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의 이행으로 평가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법원은 비록 원고들과 피고 회사 간 근로자파견관계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설령 그것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피고 회사는 위와 같은 ‘자회사 직접고용’ 방식을 통하여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피고 회사가 수급업체에게 여러 지침이나 규정을 제공한 사실 및 피고 회사 근로자가 수급업체 근로자들이 작성한 각종 대장 등에 서명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관련 법령 및 안전수칙의 준수나 업무수행 확인을 위한 취지라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섣불리 인정하는 경향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통상 불법파견 사건에서는 근로자들이 도급인의 지시·검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문서 등을 파견의 징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은 해당 문서 등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것이 진정 ‘근로자의 노무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지휘·명령’의 징표인지의 여부를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사건에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은 불법파견에 관한 소송사건을 다수 수행하면서 여러 승소사례 및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하였습니다. 또한 파견법 관련 분쟁 외에도 다양한 인사노무 분야 법률 이슈에 대하여 탁월한 전문성과 풍부한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은 인사노무 분야의 다양한 쟁점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관련 소송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한 문의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