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체결한 파생상품계약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경영진에게 약 1,700억 원의 배상책임을 물은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이하 ‘A회사’)가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은 데 대하여 A회사의 2대 주주(이하 ‘원고’)가 기업집단의 회장(A회사의 최대주주, 이사 내지 대표이사로도 재직), A회사의 대표이사 등(이하 ‘피고들’)에게 이사의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회장에게는 약 1,700억 원(책임비율 50%), 대표이사에게는 약 190억 원(책임비율 10%)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피고들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3. 30. 선고 2019다280481 판결).
최근 대법원에서 이사들에 대하여 강화된 감시의무를 부과하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판결은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의 이사가 기업집단이나 다른 계열회사와 관련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 및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인정 한계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I. 이 사건 사안 및 양 당사자 주장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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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의 개요: 이 사건은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에 속한 자회사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있던 상황에서, 그 모회사인 A회사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제3자를 통해 자회사에 대한 우호적인 의결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해당 자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한 사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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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주장: 피고들은 A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회사에 불리하고 손실이 예견되는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면서도 그 위험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거나 오히려 감수하였는데, 이는 이사로서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에 위반한 임무해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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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주장: 피고들은 파생상품계약 체결을 통하여 경영권 위협세력으로부터 A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방어하였고, 이를 통해 A회사가 해당 기업집단의 일원으로 여러 이익을 누릴 수 있었으며, 계약 체결 당시 여러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여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경영판단을 한 것이므로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II. 2019다280481 판결에서의 판단
1. 개별 계열회사들은 각자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별개의 회사이므로, 계열회사 이사는 기업집단이나 다른 계열회사 관련 직무 수행 시에도 소속회사의 이사로서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 부담
대법원은 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계열회사에 대한 적대적 M&A를 저지하고 경영권 방어를 하려는 경우, 이사는 소속 회사의 입장에서 ‘소속 회사와 계열회사 사이의 영업적·재무적 관련성 유무와 정도, 소속 회사의 계열회사에 대한 경영권 유지와 상실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의 정도, 기업집단의 변경이나 지배주주의 지배권 상실에 따른 소속회사의 사업지속 가능성, 소속회사의 재무상황과 사업계획을 고려한 주식취득비용의 적정성 등을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이 사건 파생상품계약은 (i) 제3자가 A회사의 자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취득하여 보유하면서 A회사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ii) A회사는 제3자에게 약정수수료를 지급하며, 나아가 만기 시 자회사 주가가 기준가격보다 낮으면 손실 전부를 A회사가 부담하되 그로 인한 이익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3자로부터 정산받는 내용이라고 확정한 후, 이러한 계약은 계약방식에 따르는 고유한 위험이 존재하므로 그에 대한 손실가능성 및 규모, 회사의 부담능력 등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검토하여 회사가 부담하는 비용이나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2. 판단근거 및 절차적 요소에 대한 강조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선관주의무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이사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절차를 거쳤는지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이사들이 경영판단에 앞서 이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검토하였어야 하는데, 피고들은 부정적 전망에 관한 자료들은 외면하고, 평소의 업무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파생상품계약의 가치를 평가하였으며, 계약체결의 이익이나 필요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분석·검토·보고한 자료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피고들의 책임 인정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계열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회사와 지배주주의 이익이 상충될 우려가 있는 중요한 거래에 대해서는, 회사의 관점에서 손익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사회 내에서 숙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마련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3. 경영판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회사의 이익은 실제로 얻을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인 것이어야
회사 관점의 손익과 관련하여 피고들은, 이 사건 파생상품계약을 통하여 A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함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누리게 되므로 정당한 경영판단의 범주에 있는 의사결정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이사의 경영판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익은 원칙적으로 회사가 실제로 얻을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하고, 일반적이거나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여 회사가 부담하는 비용이나 위험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여, 경영판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회사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i) 이 사건 파생상품계약을 통한 의결권 확보 효과는 계약 만기까지 한정된 기간만 유지되며, A회사가 제3자의 주식 처분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진다고 보기 어려운 점, (ii) 피고들이 내세우는 기업집단 계열회사로서의 브랜드 가치 등 이익이 구체적, 객관적이지 않은 점, (iii) A회사 이사들이 현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상실하는 경우까지 상정하여 어느 쪽이 회사와 일반 주주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판시 내용은 이사가 소속 기업집단 또는 현 지배주주와 관련된 추상적 이익이 아닌, 그 소속회사의 이익을 구체적이고 충분히 검토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4.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도 여전히 대표이사나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감독 의무를 부담
대법원은, 대표이사가 다른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그 직무를 수행하는지,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를 감시·감독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데, 특정 이사가 대표이사나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으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그 이사는 이러한 감시·감독의무를 부담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에 대해서도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부담한다고 하여, 이사에게 강화된 감시의무를 부과하는 판례의 경향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향후 기업집단 소속 회사 이사들의 업무집행과 관련하여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 판단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이며, 실무적으로도 위 판결에서 판시된 여러 사항들을 고려하여 이사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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