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러시아에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대 러시아 제재로 인한 다양한 법률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변동 상황 때문에 그 동안은 직접적인 대금 지급 또는 계약 이행 문제 등 다급한 이슈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면, 향후 한국 또는 러시아 세무당국이 조사를 나올 경우에 대비하여 대 러시아 또는 러시아발(發) 제재에 따른 이전가격 문제를 검토 해야 할 때입니다.
3월 7일자로 러시아 정부가 승인한 비우호국가 (unfriendly countries)리스트에 한국이 포함되면서 우리나라와 러시아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모회사/자회사 간의 거래에서 다양한 제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물품 이동, 로열티 지급, 그리고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이 이전가격 이슈를 발생 시킬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OECD 이전가격 가이드라인 원칙을 분석하고, 앞서 언급된 대표적인 러시아발 제재에 OECD 가이드라인을 대입함으로써 기업들이 어떻게 이전가격 이슈에 대응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겠습니다.
I. OECD 이전가격 가이드라인
독립기업의 원칙 (Arm’s length principle)은 OECD 모델조세조약 및 이전가격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이전가격 책정의 대원칙으로, 특수관계자 간에 적용한 이전가격의 적정성을 평가할 때 같은 조건에서 독립기업 간에 적용했었을 이전가격과 비교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 비교요소 (comparability factor)로 다음 다섯 가지가 활용됩니다:
1) 계약 조건 (contractual terms)
2) 당사자 및 시장이 처한 경제적 환경 (economic circumstances)
3) 각 당사자가 수행하는 역할 (functions), 활용하는 자산 (assets), 부담하는 위험 (risks)
4) 제공되는 재화 또는 서비스의 성격
5)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사업전략
러시아발 제재와 같이 정부기관에 의한 특수한 제약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위 비교요소 중 특히 계약 조건과 경제적 환경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적 환경과 관련하여, OECD 가이드라인은 정상 이전가격이 정부기관의 시장개입으로 인해 조정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대금지급 제재 또는 환율 정책 등의 정부 개입이 발생하는 경우, 기존에 적용하던 모회사/자회사 간 이전가격이 정당하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해당 정부 개입사항이 특수관계자 간의 거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기업 간 거래에도 적용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약 조건에 대하여는, 불가항력 (force majeure) 조항과 같이 서면 계약 자체의 조항들이 정부기관에 의한 제재가 발생하였을 때 수익/손실의 배분 등을 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경우에도 적정 이전가격 반영을 위한 분석은 독립기업간에 해당 조항을 어떻게 활용하였을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불가항력 조항이 예상치 못한 정부제재 발생 시 계약 관계의 전부 취소를 가능하도록 규정하더라도, 해당 정부 규제가 장기화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제3자 간의 거래에서는 계약 취소가 아닌 주요 규정의 재협상이라는 선택을 충분히 내릴 수 있습니다.
II. 상황별 이전가격 대응법
1. 물품 이동에 대한 제한
물품 이동에 대한 제한은 (i) 러시아에 대한 사치품 등의 수출 제한, (ii) 러시아산 철, 나무, 시멘트, 해산물, 주류 등의 수입 제한, (iii) 러시아 운송업자의 국외입국 제한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물품 이동에 대한 제한의 경우, 독립기업의 원칙에 따르면 한국 모회사가 러시아 자회사에 대한 영업 철수 등 활동 제한의 선택을 어느 시점에 도입하였는지가 주요 변수가 됩니다.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이 시작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수출입 규제가 도입되기 이전에 러시아 자회사의 활동을 제한했다면, 이는 러시아 자회사가 처한 러시아 경제적 상황에 의한 변화라기 보다 모회사의 평판 등 러시아 규제와 관련 없는 이유로 인한 경영 판단으로 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규제로 인한 손실을 일정부분 이상 모회사의 손실로도 인식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회사의 손실로서 증명하려면, 전쟁 이전 또는 전쟁 기간의 제3자와의 거래 자료를 확보 및 분석함으로써, 규제 도입 이전에 이미 독립기업들 간에도 일정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음을 보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 자회사의 활동이 규제 도입 이후에 줄어들었다면, 원칙적으로 러시아 시장의 경제적 상황 악화로 인정되어 모회사/자회사 통합 손실의 상당부분이 자회사 손실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러시아 세무당국이 러시아 단순유통자회사 (limited-risk distributor)가 손실을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해당 산업의 여타 러시아 자회사들도 손실이 발생 중임을 제3자 간 거래내역 확보를 통해 뒷받침해야 합니다.
2. 로열티 지급에 대한 제한
러시아는 앞서 언급된 비우호적 국가의 기업에게 지급하는 로열티 계약의 경우, 그 지급의무는 인정하되 인정 로열티율을 0%로 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예를 들어 한국 모회사 입장에서 지급받지 못한 소득에 대하여 한국에서 과세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러시아 자회사 입장에서 향후 제재가 풀리면 지급하게 될 로열티에 대하여 비용을 인정받지 못하여 세금을 과다납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OECD 가이드라인은 특정 정부기관 제재가 이전가격에 반영되는 주요 조건으로 해당 제재가 특수관계자간 거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제3자 간 거래에도 적용되야 함을 강조합니다. 비우호적 국가에 대한 로열티 지급 규제는 특수관계자 여부와 관계없이 공히 적용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이전가격 조정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한국 및 러시아 세무당국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해당 로열티 규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이러한 규제가 독립기업 간 로열티 계약에도 차별없이 적용됨을 문서화하여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3. 금융거래 제한
3월 5일자로, 러시아 기업들은 비우호적 국가의 채권자들에게 루블로만 채무를 상환할 수 있습니다. 통상 독립기업간의 차입금 계약은 주통화 이외의 통화로 이자를 지급하는 경우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 채권자에게 즉각상환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하거나 통화 변경으로 인한 이자율 재협상을 명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모회사들도 러시아 자회사에 자금을 대여한 경우, 해당 차입금 계약의 세부조항을 살펴보아 즉각 상환권을 활용할지, 이자율을 재협상할지를 결정하고, 특히 후자의 경우 벤치마크 스터디를 통해 해당 산업의 제3자 간 거래에서 조정되는 이자율을 파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