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판결의 의미: 고용간주조항에도 실효의 원칙 적용
원고는 2000. 4. 22.부터 피고 현대자동차의 아산공장 내에서 4곳의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로 일하다가 2009. 9. 26.을 마지막으로 퇴사하였습니다. 원고는 그로부터 약 11년 4개월이 지난 후인 2021. 1. 24. 피고를 상대로 구파견법상 고용간주조항을 들어 근로자지위확인 등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BKL은 항소심부터 피고를 대리하여 사건을 수행하면서 고용간주조항에도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고 원고의 근로자지위확인청구는 실효의 원칙 적용에 따라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실효의 원칙 주장에 관한 BKL의 주장을 받아들여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한 실효의 원칙은 직접고용간주를 다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
II. 실효의 원칙 적용 요건: 장기간의 권리불행사(시간요소) + 권리불행사에 대한 정당한 신뢰 형성(사정요소)
1.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실효의 원칙 적용 필요성
‘실효의 원칙’은 독일의 노동법상 권리에서 기원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노동분쟁에서 최초로 인정되었지만, 당사자의 권리의무가 문제되는 전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법원칙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근로자파견관계 소송에서 회사 측은 실효의 원칙 적용을 주장해 왔으나 법원은 단 한 차례도 이를 인정한 적이 없었습니다.1
이에 BKL은 이 사건의 상고심에서, 실효의 원칙은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된 원리로 연혁적으로 노동법상 권리의무관계를 규율하는 데에서 발전하였고, 대법원 판례 역시 노동법 영역에서 실효의 원칙이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이 전 산업분야로 확대되는 추세이고,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른 직접고용청구권의 소멸시효가 10년으로 확정된 상황(대법원 2024. 7. 11. 선고 2021다274069 판결)에서 직접고용간주의 경우에만 권리행사가 무제한 허용된다는 결론은 직접고용의무와의 형평은 물론 구체적 타당성에 반한다는 점, 피고 사업장에서 떠나 오랜 기간 피고의 사업과 무관한 직종에 근무해 온 원고가 뒤늦게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청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파견근로자의 고용불안 해소와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파견법의 목적과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고, 구파견법상 직접고용간주 조항은 사실상 돈을 받기 위한 수단에 다름없게 된다는 점, 직접고용간주 조항이 직접고용의무 조항으로 개정된 경위 등에 비추어 이 사건에 대하여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대법원은 BKL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실효의 원칙의 의의와 요건을 재확인하면서,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2.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장기간’의 의미: 시간요소 충족
대법원은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는 기간의 길이는 사회통념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원고의 소제기 시점이 직접고용이 간주된 때로부터 약 18년, 피고 사업장을 떠난 때로부터 약 11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고, 동료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대법원 승소 판결이 선고된 때로부터 약 6년이 지난 점을 고려하여 ‘장기간의 권리불행사’, 즉 시간요소의 충족을 인정하였습니다.
3. 상대방인 원고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의 존재: 사정요소 충족
대법원은 피고에게는 상대방인 원고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도 존재한다고 보아 사정요소의 충족도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이 설시한 구체적인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III. 시사점: 파견근로를 둘러싼 노동분쟁에서 실효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적용될 것임
제조업뿐 아니라 도급이나 용역을 통해 업무가 이루어지는 여러 산업에서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면 기존 계약관계는 모두 부정되고 도급인의 입장에서 ‘대규모 직고용’ 및 ‘임금차액 배상’이라는 가혹한 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에 따라 법적 불안이 심하므로, 특히 소멸시효의 적용 대상이 아닌 직접고용간주에 대하여 실효의 원칙의 적정한 적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해고사건 외에 근로자파견관계를 다투는 소송에서는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법의 일반원칙인 신의칙 적용이 사실상 배제되어 왔으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직접고용간주가 다투어지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도 실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노동 쟁송에서는 여러가지 판단요소를 고려하여 종합적 판단을 하는 결과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데 반하여 파급효과는 당해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권리자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고 의무자인 회사 입장에서 권리 불행사를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실효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권리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고 이를 통하여 경영 안정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법적 불안을 가져올 뇌관이었던 고용간주조항의 적용을 적절하게 제한함으로써 산업현장의 안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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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인사노무그룹은 개별 및 집단 근로관계 관련 다양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고 각종 유형의 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에서도 파견법과 실효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분석한 후 법률적으로 재구성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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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다221638 판결; 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9013, 2019다29044, 2019다29020, 2019다29037 판결;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0다287921 판결; 대법원 2023. 4. 13. 선고 2021다310484 판결;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49056 판결;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29571 판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