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24. 3. 12. 근로자파견관계가 쟁점인 두 개의 사건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하나는 철강회사와 제철업에서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 성부가 다퉈진 사안(2019다29013 등, 2019다28966 등)이고, 다른 하나는 고속국도 통행료 수납업무를 담당하는 외주업체 근로자들과 공기업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 인정 시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다퉈진 사안(2019다223327, 2019다223303)입니다.
I. 제철업 사내도급 관련 판결(2019다29013 등, 2019다28966 등)
1. 판결의 내용: 근로자파견관계 일부 부정
대법원은 냉연강판 등의 생산에 필요한 지원공정 업무나 차량경량화 제품 생산공정 업무를 수행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과 철강회사 사이에서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자파견 인정근거로, (i)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생산과정의 일부라 볼 수 있는 공정에서 작업을 수행하면서 철강회사로부터 작업수행에 관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 점, (ii)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는 생산과정의 흐름과 연동되어, 철강회사 근로자와 사실상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룬 점, (iii) 사내협력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게 업무배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iv) 사내협력업체들이 전문성과 기술력, 물적 시설과 고정자산을 갖추지 않은 점을 들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기계정비 업무, 전기정비 중 일부 업무, 유틸리티 업무를 수행한 일부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원심이 설시한 이유만으로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위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위 근로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는지, 사내협력업체가 작성한 작업표준서의 내용이 철강회사에 의해 사실상 결정되거나 통제되었는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무기간에도 철강회사가 업무상 지시를 하거나 일반적 업무배치권을 행사하였는지 등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하였습니다.
확인의 이익 관련하여 사망한 원고들의 경우 근로자로서의 지위가 일신전속적인 것이어서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확인의 이익이 없고, 정년을 도과하여 근로자의 지위를 회복할 수 없거나 철강회사에 이미 직접고용된 원고들의 경우에도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실효의 원칙 관련하여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철강회사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실효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는 철강회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 시사점: 개별적, 구체적 입증 필요
이번에 선고된 두 건의 대법원판결이 제철업계의 사내도급에 대한 종전 대법원판결에 비하여 근로자파견 인정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여전히 ‘생산과정의 일부라 볼 수 있는 공정’에 대하여는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판결을 통하여 근로자파견관계 인정을 위해서는 개별적, 구체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점이 명확하게 확인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철강회사가 과거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작업수행에 관한 지시를 하고, 사내협력업체로 하여금 피고가 허가한 근로자만 배치할 수 있게 하였던 사정도 있었다고 하면서도 제출된 증거만으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대상 근무기간(고용의무 발생의 요건이 되는 기간 또는 시점)에도 철강회사가 그러한 권한을 계속 행사하였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는데, 해당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기에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근로자파견관계의 5가지 판단요소를 제시한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은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은 대상과 실질적 편입의 주체를 모두 “당해 근로자”라고 명시함으로써, 개별적인 관계에서 각각 근로자파견의 징표가 존재하여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고,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면 그 효과는 개별적인 근로계약관계의 형성이므로 개별적, 구체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법리에 충실한 결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동안 근로자파견소송에서 일부 하급심이 대규모 집단소송이라는 이유로 소속 협력업체나 원고별로 증거관계를 엄격하게 조사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 대법원판결로 개별적, 구체적 입증이 요구된다는 점이 명확하게 확인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이거나 향후에 제기될 관련 소송들에서는 개별적, 구체적 입증의 존부가 중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II. 근로자파견관계 인정 시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관한 판결(2019다223327, 2019다223303)
1. 판결의 내용: 예외적으로 법원의 판단으로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3항 각호는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에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만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이하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상황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 지가 핵심 쟁점으로 다투어졌습니다.
대법원은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면서, 만약 자치적인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i) 근로의 내용과 가치, (ii)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iii) 파견법의 입법 목적, (iv) 공평의 관념, (v)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본래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함에 있어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그 한계를 설정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통행료 수납업무를 담당한 직원을 직접 고용할 경우 적어도 공기업의 조무원(현장직군으로, 해당 공기업 소속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반복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직종 전부를 지칭)에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직접고용간주 효과가 발생하였음에도 파견근로자를 현실적으로 고용하지 않고 있던 중 근로관계 중단 또는 종료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법리를 확인하면서, 다만 파업에 참가함에 따라 근로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정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결근 등을 한 기간, 급여명세서나 임금대장 등이 제출되지 않은 기간에 대하여도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유 등으로 인한 것임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해당 증명책임이 근로자측에 있음을 명시하였습니다.
2. 시사점: 기존 근로조건을 상회하는 근로조건 설정 가능성 존재
파견법은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저하되어서는 아니 된다’라는 일응의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은 이러한 기준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법원이 보충적으로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의도하지 않은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처럼, 법원이 근로조건을 보충·설정할 수 있는 요건은 대법원이 제시한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할 때 특정한 근로조건을 적용할 것을 의도하였을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인정이 되는 경우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단순히 설정되어야 할 근로조건에 관하여 당사자 간 이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법원이 근로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이해됩니다.
한편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될 때 법원의 판단에 의하여 기존 근로조건보다 상향된 근로조건이 적용될 가능성이 열린 만큼 사내도급 관계를 검토함에 있어서 근로자파견관계의 형성 여부뿐만 아니라 상향된 근로조건 적용 가능성 역시 매우 중요한 점검사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로조건의 상향 가능성이 있다면 근로자파견관계에 분쟁을 제기할 실익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분쟁 발생 가능성을 파악해보는 차원에서도 근로조건 상향 가능성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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