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L Legal Update

2026.07.20

EU 반도체법 2.0 제안: 논의 동향과 시사점

I. 배경 및 추진 동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6년 6월 3일 역내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대외의존과 공급망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EU 반도체법 2.0(Chips Act 2.0)」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번 제안은 EU의 기술주권 강화를 위한 「기술주권 패키지(Tech Sovereignty Package)」의 핵심 입법 조치로, △클라우드·AI 개발법, △오픈소스 전략, △에너지 부문의 디지털화 및 AI 전략 로드맵과 연계하여 추진될 예정입니다.

EU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을 비롯하여 센서, 전력반도체 및 마이크로컨트롤러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I 반도체와 5나노미터 이하 첨단공정에서는 미국과 아시아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관련 생태계에서도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중 기술경쟁에 따른 수출통제 확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 및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기존의 생산시설 지원 방식만으로는 기술개발부터 생산·수요·위기대응에 이르는 역내 생태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EU는 혁신·투자 기반, 수요시장, 전략적 공급역량 및 위기대응 체계를 포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존 반도체법을 개편하게 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II. 주요 내용

2023년 9월 발효된 기존 EU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은 팬데믹 이후 발생한 반도체 공급망 혼란에 대응하고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생산시설 투자와 공급망 위기대응 등 공급 측면의 조치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반면 이번 반도체법 2.0 법안은 기존 법안과 대비하여 (1) 공급 측면에서 수요-생산 선순환 측면으로 전환하고, (2) 제조 중심에서 가치사슬 전방위로 확대하며, (3) 연구개발 중심에서 상용화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하고, (4) 사후 위기 통제에서 선제적 모니터링 체제로 전환하는 데 그 차이가 있습니다.


1. 연구·혁신 및 투자 기반 확충

‘Chips for Europe Initiative 2.0’을 통해 설계 플랫폼과 파일럿라인의 기능을 고도화하고, 포토닉 집적회로, 첨단패키징 및 에너지효율 AI 칩 등 차세대 전략기술로 지원 범위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Grand Challenges’를 도입하여 핵심 기술의 연구개발부터 실증, 제품 통합 및 초기 산업 적용까지 연계함으로써 연구성과가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기반을 강화합니다. 

투자 집행을 촉진하기 위한 행정·지역 지원체계도 마련합니다. 전략적 반도체 제조시설의 인허가 절차를 최대 12개월 이내로 단축하여 투자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제조시설, 전문인력, 연구기관 및 인프라(전력·용수·부지) 등의 여건을 갖춘 지역을 반도체 특화 우수지역(Semiconductor Regions of Excellence)으로 지정하여 민간투자 유치와 지역 클러스터 육성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2. 역내 첨단칩 수요 연계 

AI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및 AI 기가팩토리에서 발생하는 AI 칩, 에너지효율 반도체 및 첨단패키징 수요를 역내 설계·검증·생산 역량과 직접 연결할 계획입니다. 특히 「클라우드·AI 개발법」과의 연계를 통해 AI·클라우드 산업에서 창출되는 신규 수요가 EU 반도체 산업의 생산 확대와 기술 상용화를 뒷받침하도록 유도합니다. 

공공조달과 수요 연계 장치도 초기시장 형성을 위한 전략수단으로 활용합니다. 공공조달 과정에서 공급안보, 역내 부가가치 및 산업역량 등을 구매 기준에 반영하고, 상용화 전 조달과 혁신 파트너십 등을 통해 유럽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한 ‘Demand Forum’과 ‘Demand Accelerators’를 통해 수요기업이 요구하는 기술과 제품 사양을 EU 반도체 프로젝트에 연결하고, 파일럿 프로젝트와 설계 협력을 지원하여 역내 기술의 조기 검증과 상용화를 촉진할 방침입니다.


3. 가치사슬 전반 역량 강화

‘전략 프로젝트(Strategic Projects)’를 통해 선단공정, 칩렛 통합 및 3D 패키징 등 역내 역량이 부족한 첨단 분야를 우선 지원할 계획입니다. 공공·민간투자를 연계하여 고성능 반도체의 설계부터 상업 생산까지 연결하는 제조시설을 구축하고, AI 반도체 등 전략 분야에 필요한 핵심 생산역량을 EU 내에 확보한다는 구상입니다. 

동시에 ‘최초·혁신 시설(First-of-a-kind, FOAK)’의 인정 범위를 제조시설 중심에서 설계, 특수소재, 장비·핵심부품, 인쇄회로기판(PCB), 첨단패키징 및 조립 등 가치사슬 전반으로 확대합니다. 다만, 이러한 FOAK 범위의 확대는 국가보조금 여력이 큰 일부 회원국으로 지원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고,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선택적 지원은 WTO 보조금협정과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있습니다.

한편, 자동차·에너지·산업용 반도체와 전력반도체, 센서, 포토닉스 및 마이크로컨트롤러 등 EU가 기존에 강점을 보유한 분야의 생산기반도 유지·확대하여 공급망 공백과 대외의존을 완화할 계획입니다.


4. 위기감시 및 대응체계 고도화

‘B2B 반도체 공급망 플랫폼’을 구축하여 위기 발생 이후 대응하던 기존 체계를 상시 감시·예방 중심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기업이 공유하는 익명화·집계 정보를 바탕으로 공급망의 의존관계와 병목요인, 잠재적 취약성을 분석하여 공급차질 위험을 조기에 식별하고, 경보 발생 시에는 집행위원회가 플랫폼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합니다. 다만, 이러한 광범위한 정보요청권이 기업의 영업비밀 우려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2027년 2분기까지 ‘반도체 위기관리 실행계획(Blueprint)’을 마련하여 집행위원회, 회원국 및 유럽반도체이사회(European Semiconductor Board)의 역할과 위기 단계별 공동 대응 절차를 구체화할 예정입니다.


III. 시사점

이번 EU 반도체법 2.0은 역내 기술주권과 공급망 자립을 강화하면서도 파트너 국가와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우리 산업계와 정부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EU 반도체 공급망의 공백을 보완하는 핵심 협력 파트너로서 기회를 모색하면서 호혜적 협력 모델을 정립해야 합니다. EU는 기술주권이 보호주의나 기술 디커플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와의 공급망 협력을 주요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첨단 메모리, 파운드리, 소재·장비 및 패키징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기업은 EU의 전략 프로젝트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협력이 단순한 역외 제품 공급보다는 공동 연구개발, 현지 생산 및 유럽 수요기업과의 장기 협력에 기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핵심 IP의 공동 소유나 차세대 기술 표준화 등 장기적이고 호혜적인 협력 모델을 바탕으로 EU 가치사슬의 취약 분야를 보완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선제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역내 기여도 요건 강화에 따른 비관세 장벽 가능성과 컴플라이언스 리스크에 대비해야 합니다. EU 시장에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역내 산업생태계에 대한 기여도가 시장 접근의 핵심 기준으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공공조달과 혁신조달에서 공급안보, 역내 부가가치, 고용 및 산업역량 등이 중시될 경우, 역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EU의 정책 지원과 초기 수요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지 투자, 공동 기술개발 및 설계·검증 거점의 보유 여부와 함께 데이터 보호, 사이버보안 및 지속가능성 요건의 중요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우리 기업들은 사업 기획 단계부터 위의 요건을 반영하고, 유럽 내 연구기관·수요기업과의 공동개발 및 현지 투자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기여도를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위기 감시 체계 작동시 이루어질 수 있는 정보 제출 압박에 대비하여,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 체계도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입법 협상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다자 및 양자 차원의 관여가 필요합니다.  반도체법 2.0은 향후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심의 및 회원국 간 협상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전략 프로젝트의 선정 기준, 역내 기여도 요건 및 정보제공 의무 등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FOAK 범위 확대에 따른 회원국 간 보조금 경쟁 심화 가능성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EU 기관 및 주요 회원국과의 정책 대화를 다각화하고, 공동 연구개발, 투자 및 공급안보 기여 사례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등 한국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협력 파트너이자 역내 생태계 기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입법 최종안의 규제를 면밀히 분석하여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합니다. 
 

 

관련 전문가: 강일, 한창완 변호사, 강지원 외국변호사(미국 New York주)

  • 본 뉴스레터에 관련된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위 연락처 또는 법무법인의 담당 변호사에게 직접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