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6도459 판결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대법원은 최근 리딩방 투자사기를 위해 개설·운영된 허위 투자 사이트가 일정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면, 그 사이트에서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자본시장법 제8조의2 제1항이 정하는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6. 4. 30. 선고 2026도459 판결). 이 판결은 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 개설·운영 금지 규정(자본시장법 제373조, 제444조 제27호)의 포섭 범위를 넓힌 선례입니다.
I.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리딩방 투자사기를 위해 텔레그램 투자 리딩방을 개설하고 허위 투자 사이트를 개설하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가상의 주식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국내 증권사의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모방하여 매도·매수, 등락 그래프, 총 자산, 거래 내역, 입금과 출금등에 관한 기능이 구비되어 있고 국내·외 주가지수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HTS와 달리, 이 사건 투자 사이트에서는 피해자들의 주문이 증권사나 거래소로 전달되지 아니하여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고인 등은 수수료 선지급 등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수익금 출금을 거절하며 피해자들의 투자금 상당액을 취득하였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거래소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운영하였다는 자본시장법 위반(제444조 제27호, 제373조)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원심은, 피고인이 개설·운영한 허위 투자 사이트가 피해자들을 기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고, 이를 이용하여 범죄조직과 피해자들 사이 또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므로, 허위 투자 사이트를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자본시장법 위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II. 주요 쟁점 및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에 따라 피고인이 개설·운영한 허위 투자 사이트를 자본시장법 제8조의2 제1항 소정의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1. 자본시장법 제8조의2 제1항이 정한 ‘금융투자상품시장’의 의미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논거에 따라, 자본시장법 제8조의2 제1항이 정하는 '금융투자상품시장'이란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시장으로 한정되지 않고, 통상의 주의력을 가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까지 포함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처벌의 본질적 이유: 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 개설 처벌의 근거는 실제 매매 발생 여부가 아니라 투자자 신뢰 훼손 및 투자자 보호·자본시장 신뢰성 제고라는 입법 목적에 대한 위험 창출에 있으며, 오히려 외관만 갖춘 경우 형사 제재의 필요성이 더욱 큼
- 법률 문언 해석: 자본시장법 제8조의2 제1항은 실제 매매 발생을 요건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평균적 시장 참여자가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경우도 '매매를 하는 시장'에 포함됨이 문언상 가능함
- 입법 연혁: 구 자본시장법상 거래소 법정주의에서 현행 자본시장법상 거래소 허가주의로의 전환시 처벌 대상을 '실제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으로만 국한하려는 의도였다는 입법 자료는 발견되지 아니함
2. 시장 참여자들이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인식할 만한 ‘외관’의 판단 기준
대법원은 통상의 주의력을 가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인지 여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습니다.
- 시장 참여자들이 증권 등을 매도·매수하고 그 대금을 입금·출금하는 기능 등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시장과 같은 기능이 구비되어 있는지(매매 기능 구비 여부)
- 시장 참여자들에게 실제 시세가 제공되고 이에 기반한 거래가 명목상 이루어지며 그 거래 결과에 따른 증권 등의 수량과 가액이 제공되는지(시세 제공 및 거래결과 표시)
- 이러한 외관이 충분히 구체적인지(외관의 구체성)
- 실제로 시장에 참여한 자들이 그와 같이 인식하였는지(참여자의 실제 인식)
III. 판결의 의의와 실무상 시사점
1. ‘금융투자상품시장' 개념에 관한 기존 판례와의 관계
대법원은 구 자본시장법하에서 한국거래소에서의 실제 선물거래를 동반하지 않는 사설 선물거래 사이트의 개설 등도 구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거래소 유사시설 개설 등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도10467 판결). 이후 대법원은 사설 선물거래 사이트에서 거래소 코스피200 지수와 연계하여 가상선물거래를 하도록 한 행위가 거래소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운영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5도1233 판결).
이러한 선례들은 주로 코스피200 지수 등 실제 시세와 연동된 사설 선물·옵션 거래 사이트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리딩방 투자사기를 위해 개설된 허위 투자 사이트 유형에 대하여서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리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2. 실무상 시사점
자본시장법 제444조 제27호 및 제373조에 의한 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 개설·운영죄는 그간 주로 사설 선물거래 사이트 사안에서 적용되어 왔습니다. 기존 판례는 실제 거래소 시세와 연동된 가상선물거래 사이트에 대해 동 조항을 적용하는 한편, 도박공간개설죄와의 상상적 경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단해 왔습니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5도1233 판결). 한편, 일부 하급심에서는 사설 HTS를 통해 실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물거래를 할 수 있게 한 것에 불과한 경우 동 조항에 의한 처벌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외관을 갖추면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실무상 다음과 같은 영향이 예상됩니다.
첫째, 수사 및 기소의 확대 가능성입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리딩방 투자사기, 가짜 HTS·MTS 앱을 이용한 온라인 투자사기 범행에 대해, 종래 사기죄 단독으로 기소되던 사안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 개설·운영)을 병합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사기죄에 더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이 규정된 자본시장법위반죄가 실체적 경합관계에 놓이게 되어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입니다.
둘째, '외관' 판단 기준의 구체화입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판단 요소(매매 기능 구비 여부, 실제 시세 제공 및 명목상 거래 결과 제시 여부, 외관의 구체성, 참여자의 실제 인식)는 향후 유사 사건에서 금융투자상품시장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실질적 기준으로 활용될 것입니다.
셋째, 피해자 구제의 보충 수단으로의 활용입니다. 자본시장법 위반이 인정됨에 따라 범죄수익 몰수·추징의 근거가 확충되고, 나아가 금융범죄 관련 양형 기준상 가중 요소로 기능할 수 있어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이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