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배경 및 추진 동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2026년 7월 17일 「전기화 행동계획(Electrification Action Plan)」을 발표하고, 경제 전반의 전기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종합 정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번 계획은 같은 날 발표된 EU 배출권거래제(EU Emissions Trading System, ETS) 개편안과 연계하여 추진되는 것으로, 역내 청정에너지 소비 확대와 전력 기반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의 성격을 갖습니다.
EU는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도 불구하고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산업·건물·수송 부문에서는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습니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등 주요국의 전기화율이 이미 30%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할 때 전환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에서 생산되는 저탄소 전력을 중심으로 에너지 시스템을 재편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전기화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현행 전력시장 구조와 전기요금 체계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전력망 이용료와 각종 세금·부담금으로 인해 전기 가격이 가스 대비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전력망 연결 지연과 저장설비 부족, 전문인력 부족 등도 전기화 전환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행동계획은 단순한 전력 소비 확대를 넘어 가격체계 개편, 전력망 및 저장 인프라 확충, 산업·건물·수송 부문의 전기화 확대, 금융지원 및 전문인력 양성을 포괄하는 종합 전략으로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2040년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46%까지 확대하고, 화석연료 수입을 대폭 감축하는 한편, 전기화를 EU의 산업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입니다.
II. 주요 내용
이번 전기화 행동계획은 기존의 재생에너지 보급 중심 정책에서 나아가 전력 소비 확대와 산업 전환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정책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1) 전기요금 체계 개편, (2) 전력망 및 유연성 강화, (3) 산업·건물·수송 부문의 전기화 확대, (4) 투자 및 제도 기반 구축을 중심으로 경제 전반의 전기화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1. 전기요금 체계 개편
집행위는 전기화 확대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전기와 가스 간 가격 격차를 지목하고,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추진합니다. 전력망 이용료를 전력 수급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는 전력 사용 비용을 낮추는 등 가격 신호를 개선하여 전력 소비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또한 회원국에 전기와 가스의 가격 격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도록 권고하는 한편, 전기에 가스보다 높은 수준의 세금이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아래 전기와 가스 간 과세체계를 개편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 등에 대한 전력망 이용료 및 세제 지원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아울러 종료 시점이 없거나 장기간 유지되는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여 전기화에 유리한 가격체계를 조성하고, 소비자와 기업의 전환을 촉진할 계획입니다.
2. 전력망 및 저장 인프라 고도화
전력망의 유연성과 계통 안정성도 강화합니다. 스마트미터와 실시간 요금제, 스마트 전력망 구축을 확대하는 한편, 배터리와 양수발전, 열에너지 저장장치 등 다양한 저장설비 확충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유럽투자은행그룹의 금융지원을 활용하여 전력망과 저장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차량·전력망 연계(Vehicle-to-Grid)를 통해 전기차를 분산형 전력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입니다. 대표적으로 데이터센터에 대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저장설비 활용, 수요반응 참여 등을 통해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하도록 관련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3. 산업·건물·수송 부문 전기화 확대
이미 상용화된 전기화 기술의 보급 확대를 통해 산업·건물·수송 부문의 화석연료 기반 설비를 단계적으로 대체할 계획입니다. 산업 부문에서는 산업용 히트펌프와 전기보일러 등 전기화 설비 도입을 확대하여 공정 전환을 촉진하고, 건물 부문에서는 히트펌프 보급 확대와 함께 사회적 리스, 보조금 및 저리 금융을 통해 초기 투자 부담을 완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건물 개보수와 병행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한편,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 승용차와 전기 트럭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기후기금과 EU ETS 수입을 활용한 무공해차 보급을 확대하는 등 부문별 전기화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4. 투자 확대 및 전기화 생태계 구축
금융지원과 제도적 기반도 강화합니다. EU ETS 개편을 통해 조성되는 산업탈탄소은행과 혁신기금을 활용하여 전기화 설비 및 전력망 투자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무상배출권 지급을 기업의 실질적인 배출감축 투자와 연계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또한 회원국 간 전기기사와 설치인력의 자격증 호환을 추진하고, 산업계와 교육기관 간 협력을 확대하여 전문인력을 양성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집행위와 회원국, 산업계 및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전기화 행동계획 연합을 출범하여 분야별 투자 애로를 해소하고 정책과 금융지원을 연계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방침입니다.
III. 시사점
EU는 2040년까지 전기화 비중을 46%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실제 현장의 전력망 연결 지연은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이용료 개편 및 실시간 요금제 도입은 기업의 전력 사용 비용 변동성을 키울 수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EU의 전기화 행동계획이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편, 이번 EU 전기화 행동계획은 에너지 정책뿐만 아니라 산업정책 및 공급망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 산업계와 정부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전기화 설비와 전력망 관련 시장의 확대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EU가 산업용 히트펌프, 저장장치, 스마트 전력망 및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관련 기자재와 핵심 부품 시장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특히 배터리, 전력기기, 전력변환장치 및 에너지 관리시스템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기업은 역내 투자 확대와 연계한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공공조달과 정책지원 과정에서 역내 기여도와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현지 생산거점이나 파트너십 구축이 없이는 사실상의 역내 보호무역 장벽에 막힐 수 있어 현지 기업과의 협력 및 생산거점 확보를 병행하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전력시장 제도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이 요구됩니다. 전력망 이용료와 세금 체계 개편, 시간대별 요금제 확대 및 V2G 제도 도입은 전력시장 운영방식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성과 경제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제조업의 전력 활용 방식이 변화하고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의 중요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은 전력 조달 전략과 에너지관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전기화 확산에 따른 새로운 규제 및 표준 체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스마트 전력망, 데이터센터, V2G 및 전문인력 인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기준과 제도적 요건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관련 입법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EU 기술표준과 인증체계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 표준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향후 시장 진입에 따른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 강일 변호사, 한창완 변호사, 임혁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