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요소가 많은 시기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시장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BKL은 2024년 한 해 동안 선고되었던 자본시장 및 자본시장법 관련 주요 대법원 판례를 총 3회에 걸쳐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증권의 발행 및 유통, 공시와 관련된 판결입니다.
》 2024년 자본시장법 주요 판례(1) 금융투자업 및 집합투자기구
》 2024년 자본시장법 주요 판례(3) 불공정거래
I. 실물주권의 종말과 전자증권시대의 개막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0다273403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상장회사인 피고의 감사로 재직하면서 2014년에 피고와 계약을 체결하고 신주발행형 주식매수 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받았습니다. 이후 원고는 해당 주식매수 선택권을 행사하였다가 거절당하자, 2018년에 피고를 상대로 “피고는 원고로부터 OOO원을 지급받은 다음 원고에게 피고 발행의 보통주식 OOO 주를 표창하는 주권을 발행하여 인도하라.”라는 취지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원고의 위 청구를 인용하였고, 피고는 원고가 주식매수 선택권 행사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상고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원심판결 선고 전인 2019. 9. 16. 시행된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전자증권법”)에 따르면 ① 상장회사가 발행한 주식은 전자증권법 시행일부터 전자등록주식으로 전환되고, ② 전자등록주식에 대해서는 증권 또는 증서를 발행해서는 아니 되며, ③ 이를 위반하여 발행된 증권 또는 증서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고가 주식매수 선택권을 행사하더라도 피고에게 주권의 발행과 인도를 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직권으로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실물증권의 존재로 인한 비효율과 불편을 해소하고 거래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하여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된 지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우리나라 증권 거래가 본격적인 전자화 시대로 진입하였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변화된 제도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따라 관련 실무와 거래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상장회사에서 신주 발행 등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전자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위 사건의 파기환송심은 원고의 교환적 청구 변경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형식의 주문으로 판결을 선고하였고, 해당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피고는 원고로부터 OOO원을 지급받은 다음 한국예탁결제원에 보통주식 XXX주의 신규 전자등록절차를 이행하고, 위 신규 전자등록 보통주식 XXX주에 관하여 원고 명의의 MMM 계좌(계좌번호 NNN)로 계좌간 대체의 전자등록절차를 이행하라.”
II. 실물주권에 대한 대상적 급부 확정 후 전자증권법이 시행된 경우의 강제집행 가능성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1다201061 판결)
1. 사건의 개요
1) 선행판결의 확정
상장회사인 원고는 2016년에 전무이사였던 피고와 주식매수 선택권(스톡옵션) 부여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피고는 2018년에 원고를 상대로 위 스톡옵션을 행사하면서 소를 제기하여 ① 주권을 인도할 것, ② 주권에 대한 강제집행이 불능일 경우 57억 6,750만 원을 지급할 것(대상적 급부청구)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2019. 9. 10. 피고의 위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
2) 주권에 대한 강제집행의 불능
피고는 2019. 9. 10. 선행판결 중 주권인도 부분에 기초하여 주권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하였으나, 6일 후인 2019. 9. 16. 전자증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상장회사인 원고의 발행주식은 전자등록주식으로 전환되었고, 원고가 기존에 발행한 주권은 효력을 상실하였으며, 원고는 새로운 주권을 발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행관은 2019. 9. 24. 강제집행에 착수하였으나, 원고로부터 ‘인도할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답변을 받고 집행불능조서를 작성하였습니다.
3) 금전(대상적 급부)에 대한 강제집행, 원고의 청구이의
이에 피고는 선행판결 중 금전지급 부분에 기초하여 대상적 급부에 해당하는 금전(57억 6,750만 원)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하였고, 2019. 10. 4. 원고의 예금채권에 대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원고는 "전자증권법으로 인하여 실물주권을 발행할 수 없다", "피고 앞으로 전자등록증명서를 공탁했으므로 금전 지급 의무도 없다"라고 주장하며 강제집행 불허를 구하는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항소심 법원은 “전자증권법의 시행으로 원고가 실물주권을 발행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 이는 원고가 주권 인도의무의 이행을 지체하여 발생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선행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이 적법하게 개시되어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이상 집행불능에 해당하고, 그 이후 전자증권법이 시행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금전에 대한 대상적 급부청구권의 성립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보아, 같은 취지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이 사건의 원심은 원고가 주권에 대한 집행불능 상태를 초래함으로써 대상청구권 발생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하면서, “설령 원고 주장과 같이 집행관의 이 사건 주식인도 집행 당시 전자등록제도의 시행으로 실물주권을 발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고가 전자등록제도의 시행을 알면서도 그 이행을 지체하여 발생된 것이므로 이 역시 집행불능 상태로 평가함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여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원고는 전자증권법 시행 전에 주권 인도의무를 이행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의무 회피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법적 의무를 지연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III. 분식회계 공표 전 매각된 주식에 대한 손해인과관계의 인정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1다269418, 2021다269432(병합), 2021다269425(병합)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 D 주식회사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원가를 과소 계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14기와 제15기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습니다. 외부감사인인 피고 A 회계법인은 위와 같은 허위의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의견'을 기재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했고, 해당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는 2014년 3월과 2015년 3월에 각각 공시되었습니다.
이후 2015. 5. 4.부터 피고 D의 적자 전환이 전망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2015. 7. 15.에는 ‘피고 D가 2조 원대의 누적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고 숨겨왔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피고 D의 주가가 급락하였습니다. 이후 피고 D가 2016. 4. 14. 제14기와 제15기 재무제표에 대한 정정공시를 하자, 피고 D의 주가는 더욱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피고 D의 주주들인 원고들은 피고 D, A 등에 대하여 제14기, 제15기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의 허위공시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피고들은 다른 항변과 함께 「적어도 피고 D의 적자 전환을 전망한 언론 보도가 나온 2015. 5. 4. 이전에는 분식회계 사실이 아직 시장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분식회계로 인해 부양된 주가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원고들이 위 2015. 5. 4. 이전에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입은 손해와 분식회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손해인과관계의 부인).
원심은 위 2015. 5. 4. 언론 보도 이전에는 증권사 리포트 등에서 피고 회사에 대한 투자가치가 높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는 사정 등을 근거로, “(2015. 5. 3.까지는) 분식회계 사실의 공표에 갈음한다고 평가할 만한 유사정보가 시장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 결과 위 기간 동안에는 이 사건 분식회계 또는 그 유사정보가 피고 회사의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피고들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근거로 삼은 사정만으로는 위 기간(2015. 5. 4. 이전)에 피고 D의 주가가 하락한 원인이 이 사건 허위공시 때문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정도를 넘어, 이 사건 허위공시가 주가 하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거나 다른 요인에 의하여 주가가 하락하였음이 증명되어 자본시장법상 손해액 추정이 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하고, 위 쟁점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은 위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언론 보도의 내용은 대체로 피고 D가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입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무제표에 그 손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피고 D의 재무적 부실이 곧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취지이므로, 피고 D의 회계투명성을 의심하게 하거나 재무불건전성을 드러내는 정보로 볼 수 있다는 사정 등을 들었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자본시장법은 사업보고서 등의 허위공시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증권 취득자가 그 제출인 등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에게 허위공시와 취득자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음을 증명할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자본시장법 제162조 제1항, 제4항; 손해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의 전환).
대법원은 “특히 문제된 허위공시의 내용이 분식회계인 경우에는 그 성질상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분식회계 사실의 공표를 갈음한다고 평가할 만한 유사정보(예컨대 외부감사인의 한정의견처럼 회계투명성을 의심하게 하는 정보, 회사의 재무불건전성을 드러내는 정보 등)의 누출이 사전에 조금씩 일어나기 쉽다는 점에서 공표 전 매각분이라는 사실 자체의 증명만으로 인과관계 부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7. 9. 21. 선고 2006다81981 판결 등). 이 대법원 판결은 위와 같은 판례의 법리를 다시 확인하면서, 피고 D에 대한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한 것입니다.
IV. 회사 정관상 주주권 상실 조항의 효력 (대법원 2024. 7. 11. 선고 2020다258824 판결)
1. 사건의 개요
주식회사인 피고는 그 정관에 “주주의 자격”에 관한 규정을 두어, 주주가 A지역 내 부동산의 소유권을 상실하면 ① 별도의 절차 없이 주주의 자격을 상실하고, ② 보유하던 주식은 나머지 주주에게 균분하여 양도한 것으로 보며, ③ 주주는 회사로부터 액면가 상당의 출자금을 돌려받는 것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원고들은 A 지역 내 부동산의 소유권을 상실하였고, 이에 피고는 원고들이 주주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보아 그 보유 주식을 다른 주주들의 명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원고들은 이에 반발하여 피고를 상대로 명의개서절차 이행청구(주주지위 회복) 및 배당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은 위와 같은 정관 규정이 일종의 “주식양도 약속”과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원심은 위 정관이 ‘피고 설립 당시 A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거주하고 있다가 위 부동산의 소유권을 상실한 주주의 주식을 잔류주민들에게 균분하여 양도하도록 하는 취지’로서 그 효력이 인정되므로, 원고들은 더 이상 피고의 주주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위와 같은 정관 규정이 주식회사의 본질에 반하여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주식의 양도 등 법률에 정하여진 사유 없이 정관에서 정한 주주 자격 상실 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주주 지위가 상실된다고 볼 수는 없고, 그러한 경우 곧바로 주주 지위를 상실하도록 정한 위 정관은 물적 회사로서 주식회사의 본질에 반하므로 그 효력이 없으며, 이는 피고의 주주 구성이 소수에 의하여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고들이 주주자격을 상실하였음을 전제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주주권은 주식의 양도나 소각 등 법률에 정하여진 사유에 의하여서만 상실되며(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다54691 판결 등), 주식회사는 인적 회사인 합명회사, 합자회사와 달리 사원의 퇴사가 인정되지 않아 주주를 제명하고 회사가 그 주주에게 출자금 등을 환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규정한 정관이나 내부규정은 주식회사의 본질에 반하여 무효입니다(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5다60147 판결 등).
이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판례의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주식회사가 인적 결합이 아닌 자본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물적 회사로서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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