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5000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 자본시장의 열기가 뜨거운 시기입니다. BKL은 2025년 한 해 동안 선고된 자본시장 및 자본시장법 관련 주요 대법원 판례를 총 5회에 걸쳐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금융기관 및 이사의 책임과 관련된 판결입니다.
I. 사모펀드 GP는 LP에게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나? (대법원 2025. 10. 16. 선고 2023다226170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들은 화장품 제조사 A를 인수하기 위하여 설립된 사모펀드의 무한책임사원(General Partner, “GP”)입니다. 원고는 피고들의 권유로 위 사모펀드에 출자금을 납입하고 유한책임사원(Limited Partner, “LP”)이 된 투자자입니다.
GP인 피고들은 원고 등 투자자들에게 “A회사가 화장품 레시피권(화장품의 성분, 함량 및 제조공정에 관한 영업비밀, Know-How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투자를 권유하였는데, 이후 LP가 된 원고가 출자금을 납입하기 전 “다른 회사가 A회사의 화장품에 대한 레시피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들은 원고에게 이러한 사정들을 알리지 않았고, 이에 원고는 피고들이 GP로서 정보제공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며 피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투자자들이 유한책임사원(LP)이 된 후에도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설립ㆍ운용자는 유한책임사원에게 출자이행청구를 하여 유한책임사원으로부터 출자금을 납입받기 전까지는 투자권유단계에서 요구되었던 내용과 유사하게 유한책임사원이 투자를 계속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이 위 판단의 근거로 든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설립ㆍ운용자(GP)는 해당 사모투자전문회사의 투자대상과 투자방법 및 투자회수구조 등의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여 이를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유한책임사원으로서 투자에 참여하려는 투자자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고, GP의 위와 같은 지위는 투자자들이 PEF의 LP가 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달라진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② LP가 투자대상기업 선정, 투자대상기업의 지분증권을 매매하는 경우 가격ㆍ시가ㆍ방법의 결정 등에 관한 GP의 업무에 관여할 수 없는 점
이에 대법원은 GP인 피고들이 LP인 원고의 출자금 납입 전 “A회사와 관련한 정보의 진위를 비롯한 수익구조 및 위험요인에 관한 사항을 합리적으로 조사한 다음 올바른 정보를 원고에게 알리지 아니함으로써 투자대상에 대한 중요한 정보제공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손해액의 산정과 관련하여서는, GP의 의무 위반으로 인한 LP의 손해액은 '미회수금액(지분 취득 총액 - 회수했거나 회수할 수 있는 총액)'이며, 이 손해는 미회수금액의 발생이 확정된 시점에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자본시장법상 PEF의 GP는 투자 정보를 독점하고 생산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기존의 법리가 주로 '투자 권유 단계'에서의 설명의무에 집중했다면, 이번 판결은 투자 결정 이후 자금 집행(Capital Call) 단계까지 GP의 고지의무를 연장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함에 있어 단순히 "현재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며, 펀드의 청산 절차나 잔여 자산의 가치를 고려하여 '손해의 확정 여부'를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GP에게는 엄격한 사후관리 책무를 부여하고, LP에게는 손해액을 정교하게 입증하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II. 보험사가 대리점 소속 보험설계사의 잘못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가? (대법원 2025. 9. 25. 선고 2025다212464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는 보험사입니다. 원고는 피고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한 A회사 소속의 보험설계사 B에게 속아 가짜 금융상품에 가입한 사람입니다.
B는 원고에게 피고의 로고가 인쇄된 ‘재정안정계획서’라는 서류를 제시하면서 사실은 없는 허위 금융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하였고, 원고는 보험료를 송금하고 B로부터 피고 명의로 작성된 보험증권을 교부받았습니다.
이후 속은 것을 알게 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5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5조 제1항은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자신이 직접 계약의 상대방으로서 금융상품에 관한 계약의 체결을 영업으로 하는 자)가 금융상품판매대리ㆍ중개업자(금융상품에 관한 계약의 체결을 대리하거나 중개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자)의 대리ㆍ중개 업무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위 규정에서 말하는 '금융상품판매대리ㆍ중개업자'에 보험대리점(A회사)뿐 아니라 그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소속 보험설계사(B)도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따라서 피고는 자신과 직접 계약하지 않은 B의 대리ㆍ중개 업무로 인하여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도 배상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직접판매업자(금융사) 책임 규정을 구체화한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 판결은 기존 민법상 사용자책임보다 금융기관의 책임을 더욱 두텁게 규정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를 살려, 보험사가 자신에게 소속되지 아니한 대리점(GA) 설계사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도 '무과실에 가까운’ 배상 책임을 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보험사가 보험설계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면, 허위 상품 판매와 같은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한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III. 담합이 적발되어 과징금을 낸 회사 대표이사의 손익상계 주장 제한 (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1다256696, 256702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는 국내 부탄가스 제조사의 대표이사입니다. 원고들은 위 회사의 주주들입니다.
피고는 경쟁사들과 5년간 제품 가격을 담합하였고, 이것이 적발되어 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약 16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상법상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여 피고로 하여금 회사에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할 것을 청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담합을 통해 회사에 발생한 매출 및 이익이 과징금보다 크기에 이를 손해액 산정시 공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위와 같은 피고의 손익상계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회사는 기업활동을 하면서 범죄를 수단으로 하여서는 아니 되므로, 이사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면서 고의ㆍ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 설령 그 법령 위반 행위로 인하여 회사에 어떠한 이득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득을 손익상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사의 법령 위반 행위로 인한 회사의 위법한 이득 보유를 그대로 승인하고 그 범위 내에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이사의 법령 위반 행위와 회사의 범죄를 조장하고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에도 반하는 결과가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회사가 이사의 불법행위 등으로 인하여 경제적 이익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위법한 이득은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할 때 손익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여, 이사의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수행하여야 할 의무’를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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