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5000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 자본시장의 열기가 뜨거운 시기입니다. BKL은 2025년 한 해 동안 선고된 자본시장 및 자본시장법 관련 주요 대법원 판례를 총 5회에 걸쳐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공시 및 불공정거래에 관한 판결입니다.
▶ 2025 자본시장 판례 리뷰(1) 금융기관·이사 책임, 어디까지 확대되나
I. 대표이사가 회사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해도 ‘타인 명의 거래’가 될까 (대법원 2025. 6. 5. 선고 2025도676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인들은 인터넷 도박 및 투자사기 등 범죄 조직의 범죄수익을 세탁해 주기 위해 상품권 매매업체를 가장한 다수의 '유령 법인'을 설립한 사람들입니다.
‘유령 법인’의 대표이사 명의를 가진 피고인들은 조직원들이 피해자들을 속여 법인의 계좌로 송금 받은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조직에 전달하고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검찰은 이러한 행위를 '탈법 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을 빌려 금융거래를 한 행위'로 보아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으나, 원심(2심)은 ‘대표이사가 주식회사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는 주식회사가 대표이사를 통하여 자신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원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법인 명의 거래의 실질적 평가: 법인의 대표자가 형식적으로는 법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범죄를 위해 법인 명의를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면 이는 금융실명법이 금지하는 '타인 실명 거래'에 해당합니다.
》판단 기준의 제시: 단순히 법인 대표라는 사실만 따질 것이 아니라 다음 사정들을 종합해야 합니다.
• 법인의 설립 목적이 오로지 범죄(자금세탁 등)를 위한 것이었는가?
• 법인이 법률과 정관에 따른 정상적 영업 활동을 수행한 적이 있는가?
• 법인이 사실상 형해화(이름만 남음)되어 있는가?
• 거래에 따른 실질적 이익이 법인이 아닌 개인(행위자)에게 귀속되는가?
》구체적 적용: 이 사건에 등장한 ‘유령 법인’들은 오로지 범죄수익 인출을 위해 급조되었고 실제 상품권 매매 실적이 전혀 없으며, 자금세탁에 따른 수익(수수료)은 법인이 아닌 피고인들에게 개인적으로 귀속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금융거래가 법인 명의를 빌린 '타인 명의 거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법인격이 금융범죄의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 금융실명법상 금지된 ‘타인 명의 금융거래’ 해당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금융거래의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여 판단하면서, "내 회사 계좌를 내가 쓴 것이니 금융실명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유령 법인 운영자들의 변명을 배척하였습니다. 대포 통장이나 ‘유령 법인’ 계좌를 사용한 범죄수익 세탁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II. 분식회계를 한 회사에 대한 투자 손해는 어떻게 계산할까 (대법원 2025. 8. 14. 선고 2023다294180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 A는 대형 조선사이고, 피고 B는 A의 재무제표를 감사한 후 ‘적정’ 의견을 표명한 회계법인입니다. 원고는 피고 A가 발행한 사채를 매수하였습니다.
이후 A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원고가 매수한 사채의 가치가 폭락했고, 채무 조정 과정을 거쳐 사채의 일부가 주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출자전환). 원고는 피고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피고들은 "원고가 매수한 사채의 출자전환이나 이자 수령 등을 통해 회수한 금액은 손해액에서 제외하여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피고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당사자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피고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① 손해액 산정의 기준 시점: 원고의 손해는 분식회계에 따른 허위 공시를 보고 사채를 매수한 시점에 즉시 발생하였으므로, 손해액은 [원고의 사채 매수가격 – 허위 공시가 없었더라면 형성되었을 실제 가치(정상가격)]의 방식으로 산정하여야 함
② 후발적 사정의 배제: 원고가 사채를 매수하여 손해를 입은 이후에 발생한 출자전환, 이자 수령, 사채 매도 등으로 인하여 일부 돈을 회수했거나 회수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은 원칙적으로 손해액 산정에 영향을 주지 아니함
③ 손익상계의 엄격한 요건: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손익상계가 허용되려면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이 되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새로운 이득'을 얻은 경우여야 하는데, 원고가 받은 이자는 사채가 예정하는 권리나 이익이 실현된 것일 뿐 불법행위로 인해 얻은 ‘새로운 이득’에 해당하지 아니함
3. 판결의 의미
투자자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의 부실 기재로 인하여 입은 손해액을 어떤 방법으로 산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원고의 사채 매수 시점에 이미 손해가 확정되었다는 전제하에, 사채원리금의 상환 등 사후적 사정을 함께 고려하여 투자자의 손해를 계산하여야 한다는 피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III. 상장법인은 모든 소송을 공시해야 할까 (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3다271798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들은 상장사인 甲 회사의 전직 이사들이고, 원고들은 甲 회사의 주주들입니다.
법원은 2014. 12. 5. 甲 회사 소유 공장에 대하여 경매개시결정을 하였는데, 甲 회사는 2015. 1. 6.에야 위 경매개시결정 사실을 공시하고 다음날 회생신청을 하였습니다. 甲 회사는 위 경매 관련 공시불이행을 이유로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들이 주요사항보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기재 또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자본시장법 제162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심(2심)은 위 경매개시결정이 甲 회사가 회생신청을 한 직접적 원인이며 그 자체로 법인의 경영·재산 등에 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었다고 판단하며 피고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상장사의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대상인 소송은 ‘증권에 관한 소송’만을 의미하고, ‘증권에 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소송’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제도 도입 취지: 주요사항보고서 제도는 자본시장법이 제정되면서 기존의 수시공시 항목 중 특히 중요한 사항들을 분리하여 공적 규제 대상으로 하고 그 밖의 사항들은 자율 규제 대상으로 함으로써 기업이 이중으로 공시의무를 부담하지 않도록 한 것이므로 이러한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
② 형벌법규에 대한 엄격한 해석 필요성: 자본시장법상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으므로,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함
③ 일의적 해석의 어려움: 만약 ‘증권에 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칠 모든 소송’을 공시해야 한다면,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의무가 있는 법인이 ‘중대한 영향’이라는 불명확한 문언 해석의 위험을 부담하게 되어 결국 법인에 관한 소송이 제기된 모든 경우에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할 가능성도 있음. 이는 제도 도입 취지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임
이에 대법원은 甲 회사가 문제된 경매개시결정이 있었다고 하여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는 없었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등으로 하여금 ‘증권에 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칠 소송’이 제기된 때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자본시장법 제161조 제1항 제10호,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1조 제3항 제2호), 제출의무를 위반한 법인에게 과징금과 형사처벌 등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은 주요사항보고서의 제출의무에 관한 자본시장법 규정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해석함으로써 기업들의 과도한 공시 부담을 완화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IV. ‘내부자(insider)’는 어디까지인가 (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1도11654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상장사인 A사의 정식 임직원이 아니었고, 회사와 서면으로 된 고문 계약이나 용역 계약을 체결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A사 사주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회사의 자금 조달, 투자 유치, 인수합병(M&A) 등 핵심 경영 사안에 깊이 관여하며 사실상 고문이나 전략기획 담당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은 A사의 주가에 호재가 될 수 있는 미공개 중요정보를 미리 알게 되었고, 정보가 공시되기 전 타인 명의 계좌로 주식을 사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내부자(대리인)'의 미공개정보 이용행위로 보아 기소했습니다(자본시장법 제174조 제1항 제1호 참조).
피고인은 "나는 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은 적이 없으니, 미공개중요정보 이용을 하면 안 되는 '대리인'이 아니다"라면서 무죄를 주장하였고, 원심(2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면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① 정보 비대칭성 해소: 내부자거래 규제의 취지는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해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를 막는 데 있고, 정식 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정보를 독점한 실질적 조력자를 제외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 반함
② '대리인'의 실질적 해석: 미공개정보 이용행위로 인한 처벌 대상인 '대리인'은 반드시 민법상 대리인에 한정되지 아니함. 행위 형식이나 명칭을 불문하고, 회사 업무에 관한 위임이나 위탁에 따라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였다면 대리인에 포함됨
이에 대법원은 피고인이 회사 내에서 어떠한 직함을 가지거나 명시적으로 투자 유치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은 것은 아니지만, 투자 유치 또는 투자계약 체결과 관련하여 회사로부터 묵시적 위임을 받고 회사를 위해 투자자와의 협상에 관여하는 등 자본시장법 제174조 제1항 제1호의 ‘대리인’으로서 그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상장회사 주변에서 활동하는 소위 '그림자 조력자'들에 의한 정보 유출과 불공정거래에 대하여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댄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형식(계약)'보다 '실질(업무 수행 및 정보 접근성)'을 우선하는 최근 대법원의 자본시장법 해석 기조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계약서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내부자거래 처벌을 피해 가려던 관행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기업으로서는 정식 임직원이 아닌 외부 고문이나 자문역을 활용할 때도 이들이 내부자거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지하도록 하고, 정보 보안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V. ‘핀플루언서’의 진화된 선행매매 (대법원 2025. 12. 11. 선고 2025도4748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주식 유튜버입니다. 피고인은 유료 멤버십 유튜브 채널과 주식 리딩 업체를 운영하며 특정 종목들에 대하여 "4만 원 이상까지 봐도 된다", "지금은 매도할 때가 아니다"라는 등 추천하였습니다.
이처럼 피고인은 주가 상승 및 매수세 유입과 매도세 저지를 유도해 놓고, 막상 자신은 CFD(차액결제거래)를 통해 해당 주식을 대량 매도하여 이득을 보았습니다. CFD를 활용할 경우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는 않으므로 주주명부에 이름이 등재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시청자를 기망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한 '사기적 부정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피고인은 1심에서 "해당 주식을 수 개월에서 수 년 전부터 보유하였고,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방송하였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유죄(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3억 원)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추천 행위의 실질적 해석: "최종 투자판단은 투자자의 몫"이라는 면책 문구를 사용하였더라도, 피고인이 전문가로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구체적 목표가를 제시하거나 매도를 보류시킨 행위는 실질적인 '매수 추천'에 해당함.
》이해관계 고지의 시의성과 구체성: 단지 과거에 보유했다는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는 부족함. 추천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시점, 바로 그 채널에서, '방송 직후 매도할 계획이나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까지 투자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고지했어야 함.
》위계(기망)의 성립: 본인은 차익 실현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청자에게는 매수나 매도 보류를 권유한 모순 자체가 투자자를 속이는 '위계'이자 '부정한 기교'임. 주식 보유 기간이 길었다는 점은 부정거래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음.
》부당이득 산정 곤란과 처벌: 다만 다른 호재성 보도 등과 섞여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순수 주가 상승분을 분리하기 어려워,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익액 산정 곤란 시의 벌금형을 부과함
3. 판결의 의미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활동하는 '핀플루언서'의 투자정보 제공에 대해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물은 판결입니다. 특히 CFD 거래를 활용해 이해관계를 은폐하고 '매도 보류' 권유를 통해 주가 하락을 방어하며 물량을 처분한 진화된 선행매매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법원은 '영향력에 따른 실질적 신뢰'를 우선시했습니다. 앞으로 핀플루언서들은 본인의 매매 계획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일반 투자자들도 전문가의 명성이 오히려 자신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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