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요소가 많은 시기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시장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BKL은 2024년 한 해 동안 선고되었던 자본시장 및 자본시장법 관련 주요 대법원 판례를 총 3회에 걸쳐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금융투자업, 집합투자기구와 관련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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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투자신탁(펀드) 운용사의 책임 범위와 이행판결 주문의 형식 (대법원 2024. 7. 11. 선고 2021다308900 판결)
1. 사건의 개요
A 펀드를 설정, 운용하는 집합투자업자인 甲 회사는 수익자들에 대한 중간배당과 신탁보수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乙 회사와 이자율 스왑거래 약정을 체결하면서, ① 계약당사자를 ‘A 펀드의 집합투자업자로서 甲’이라고 명시하고, ② 특별조건으로 ‘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권리·의무는 A 펀드에 귀속된다’고 약정하였습니다.
이후 乙이 甲에게 위 이자율 스왑거래 약정에 따른 정산금 지급을 청구하자, 甲은 “이행 책임은 A 펀드의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 하며 고유재산으로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甲의 책임이 A 펀드의 투자신탁재산 한도 내로 한정된다고 인정하면서, 판결 주문에 “甲은 乙에게 A 펀드의 투자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 OO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1) 투자신탁의 기본 구조
대법원은 우선 투자신탁의 기본 구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1) 투자신탁의 집합투자업자가 자신의 명의로 직접 투자대상자산의 취득·처분 등을 하면서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 이행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집합투자업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고유재산이 아닌 투자신탁재산으로만 이행책임을 부담한다. 집합투자업자의 이행책임 내용이 금전 지급의무인 경우 그 책임재산은 투자신탁재산으로 제한된다.
(2) 자본시장법 제80조 제1항 본문, 제184조 제3항에 따르면 투자신탁재산은 신탁업자가 보관·관리하고, 집합투자업자는 투자신탁재산을 운용함에 있어서 신탁업자에게 투자대상자산의 취득·처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지시를 하여야 하며, 신탁업자는 집합투자업자의 지시에 따라 투자대상자산의 취득·처분 등을 하여야 한다.
(3) 이와 같이 투자신탁재산으로 이행책임이 제한되는 금전 지급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집합투자업자는 신탁업자를 통해 상대방에게 투자신탁재산으로 금전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필요한 협력을 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2) 이행판결 주문의 형식
대법원은 이러한 사안에서 집합투자업자에 대한 판결 주문에 ‘투자신탁재산의 한도에서 금전 지급을 명하는 내용’만을 표시할 경우, 이런 판결로는 신탁업자가 대외적으로 관리·처분권을 행사하는 투자신탁재산에 관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집합투자업자의 고유재산에 관하여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이러한 사안의 판결 주문은 ‘신탁업자에 대하여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 상대방에게 금전 지급을 지시하는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이 대법원 판결은 집합투자업자의 고유재산이 잘못된 강제집행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집합투자업자의 고유재산과 투자신탁재산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실무상으로는 투자신탁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집합투자업자와 신탁업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기재하고, 투자신탁재산을 통하여 이행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각 당사자의 역할과 책임 범위를 정확히 반영하여 강제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II.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손실보전 약정의 효력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다311665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인 피고로부터 증권정보를 제공받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특약사항으로 원고가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누적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추가로 증권정보를 제공받거나 이용요금을 환급받기로 약정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위 계약이 자본시장법 제17조(미등록 영업행위의 금지) 및 제55조(손실보전 등의 금지)를 위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이용요금 반환을 청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i) 미등록 투자자문업의 영위를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17조는 효력규정이어서 이를 위반하는 내용의 계약은 무효이고, (ii) 금융투자업자가 투자자에게 손실보전 내지 이익보장 약속을 금지한 자본시장법 제55조를 피고와 같은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해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 위와 같은 계약의 사법상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의 사법상 효력을 부정할 근거가 없고, 해당 특약사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1) 자본시장법 제17조의 성격: 단속규정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7조를 위반하여 체결한 투자일임계약 내지 투자자문계약 자체가 그 사법상 효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 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그 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하여야만 비로소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 피고가 자본시장법 제17조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효력규정이 아닌 단속규정으로 판단).
2) 자본시장법 제55조의 유추적용 여부: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는 적용되지 아니함
대법원은 손실보전 내지 이익보장을 금지한 자본시장법 제55조를 피고와 같은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은 (1)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에 해당하는 투자자문업자와 달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 조언을 제공하는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해서는 영업행위 규칙(자본시장법 제2편 제4장)을 적용하지 않는 점, (2)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손실보전 및 이익보장은 종래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다가 개정 법률(2024. 2. 13. 법률 제20305호로 개정되어 2024. 8. 14. 시행된 자본시장법 제101조의2 제1항)에서 비로소 금지된 점, (3) 투자자문업자는 고객의 투자목적, 재산상황 등을 반영한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유사투자자문업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획일적인 조언만 가능하고 일정한 자격 요건 없이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하므로 금융투자업자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3. 판결의 의미
이 대법원 판결은 미등록 영업행위의 금지를 규정한 자본시장법 제17조의 효력 및 유사투자자문업자와 투자자문업자의 구별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유사투자자문업의 법적 구분 및 그에 따른 규제 차이를 명확하게 하였습니다.
III. 투자자 보호의무 위반 손해배상청구와 법원의 석명의무 (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1다300173 판결)
1. 사건의 개요
투자중개업 등을 영위하는 피고는 투자자들에게 투자신탁(펀드)의 수익증권을 매도하였습니다. 해당 펀드는 외국 특수목적법인이 발행한 사모사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으며, 위 사모사채 대금은 미국의 대출 플랫폼을 통해 소상공인 대출채권 등에 투자되었습니다. 이후 해외 운용사의 대표가 대출실적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고, 미국 법원의 자산 동결 조치로 인해 펀드의 상환금 및 수익금 지급이 중단되었습니다.
이에 상환금과 수익금을 받지 못하게 된 투자자들은 피고를 상대로 투자자보호의무 등을 주장하면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은 위와 같은 원고들의 청구원인에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 또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피고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원심이 석명 또는 지적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1) 원고들의 청구원인에 채무불이행책임 외에 불법행위책임 주장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가 불명료하였고, 피고로서도 원고의 주장에 불법행위책임 주장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주장에 대한 방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원고가 청구원인으로 다양한 주장을 펼치는 상황에서 명시적인 언급이 없는 투자자보호의무 등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책임 주장에 관하여 피고에게 적절한 방어의 기회가 제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3) 원심으로서는 원고가 투자자보호의무 등 위반과 관련하여 불법행위책임 주장도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석명권을 행사하여 그 주장의 취지를 명확히 한 다음 그에 맞는 요건사실에 관한 주장·증명을 할 수 있게 하고 피고에게도 분명해진 청구원인에 대하여 충분하게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어야 한다.
3. 판결의 의미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당사자의 주장이 불명확할 경우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특히 청구취지나 청구원인의 법적 근거에 따라 증명책임이 달라지는 중대한 법률적 사항의 경우, 법원은 더욱 세심하게 당사자들의 주장을 확인하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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