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사법원(Commercial Court)은 최근 주식매매계약(Share Purchase Agreement, "SPA")상 진술보장(warranty) 위반이 문제된 사건에서, 매도인이 진술보장 중 하나를 위반하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SPA상 매도인의 책임 요건인 사기(fraud) 또는 고의적 위법행위(wilful misconduct)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도인의 책임을 부정하였습니다(Veranova Bidco LP v Johnson Matthey plc & Ors [2026] EWHC 1021 (Comm)).
이번 판결은 법원이 계약상 진술보장 위반, 불충분한 공개, 사기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개념임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진술보장 위반과 불충분한 공개만으로는 회사 차원의 부정직하거나 무모한(reckless) 심리상태가 바로 성립되지 않으며, 명시적인 계약 규정이 없는 한 기초 사실을 아는 사람의 인식과 진술보장의 허위여부를 아는 다른 사람의 인식을 합하여 사기를 구성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청구를 사기 등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는 규정의 위험성, 주요 진술보장과 관련하여 매도인에게 요구되는 공개의 수준, 계약에서 정한 공개 수단 밖의 진술에 의존할 수 있는지 여부 등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M&A 계약 실무 전반에 걸쳐 참고할 만한 판시를 담고 있습니다.
I. 사안의 개요
이 사건 분쟁은 Johnson Matthey 그룹(이하 “매도인”)이 헬스케어 사업 부문을 Veranova Bidco(이하 “매수인”)에게 매각하는 내용의 SPA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해당 SPA에는 (i) 사업이 과거 관행에 따라 중대한 변경 없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보장('통상영업 보장(Ordinary Course Warranty)')과 (ii) 주요 계약의 중요 조건이 사업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현재 재협상되고 있지 않다는 보장('주요계약 보장(Key Contracts Warranty)')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매수인이 진술보장 위반을 이유로 매도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SPA상 책임 제한규정에 따라 그 청구가 매도인의 사기 또는 고의적 위법행위에서 직접 비롯되었거나 관련하여 발생된 것이라는 점까지 증명하여야 했습니다.
한편 매도인은 SPA 체결 두 달 전, 헬스케어 사업의 부프레노르핀 염산염(buprenorphine hydrochloride, "BHCL") 최대 고객인 Alvogen으로부터, 기존 공급가의 절반 수준으로 BHCL을 공급하겠다는 제3자의 제안이 있었으므로, 공급계약상 가격 매칭 조항(price match clause)을 근거로 그 제안에 상응하는 공급가 인하를 요구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매수인은 Alvogen과의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는 전달받았으나, 매도인이 Alvogen이 제3자로부터 받은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가격, 해당 제안이 진정한 것(bona fide)으로 확인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매도인 측이 그 제안된 가격 또는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맞춰 Alvogen과의 비즈니스를 유지하려 하였다는 사실 등을 공개하지 않아 Alvogen과의 협의 규모 및 예상되는 영향에 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갖게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주요계약 보장 위반을 이유로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II. 영국 법원의 판단
영국 상사법원(Commercial Court)은 ①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 여부 ② 매도인과Alvogen 사이의 협상과 관련하여 공정한 공개(fair disclosure)가 있었는지 여부 ③ 매도인의 사기(fraud)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차례로 판단하였습니다.
진술보장 위반 여부에 관하여 법원은 우선 가격 하락이 이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고 가격 매칭 조항이 과거에도 발동된 적이 있는 이상, 그 조항의 발동에 따른 가격 협상은 전적으로 사업의 통상적인 운영 범위에 속한다고 보며 매도인의 통상영업 보장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Alvogen이 요구한 수준으로 공급 가격이 인하될 경우 사업이 생산원가를 겨우 회수하고 생산시설 한 곳의 존속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점에서 Alvogen과의 재협상이 사업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고 보고, Alvogen이 가격 매칭 조항을 발동함으로써 보장 조항이 정한 의미의 재협상이 이미 개시되었다고 보아, SPA 체결일까지는 재협상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매도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주요계약 보장 위반을 인정하였습니다.
법원은 공정한 공개(fair disclosure)와 관련해서는 공정한 공개가 있었다고 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매수인이 위험의 성격과 범위를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하며, 매도인은 가격 인하가 예상되는 구체적인 경위를 공개했어야 하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거나 가격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일반적인 언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SPA에서 공개서한(Disclosure Letter)이나 데이터룸 등을 통한 공개를 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해진 공개방법이 아닌), 실사(due diligence) 협의 과정에서 제공되었다고 주장되는 자료로 공개 내용을 보완하거나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보면서 매도인의 공정한 공개(fair disclosure)가 없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기(fraud)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매도인의 사기(fraud)가 인정되려면 특정 임원 한 사람이 ① 진술보장을 허위로 만드는 특정 사실을 알고 있었고, ② 그 사실이 진술보장에 문제가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만큼 진술보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거나 혹은 진술보장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recklessly indifferent), ③ 공개되었다고 정직하게 믿고 있던 내용에 비추어 진술보장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진실이라는 정직한 믿음(honest belief)이 없었거나 그 진위에 개의치 않았다는 점이 모두 입증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매수인은 매도인 측 여러 임원이 저마다 알고 있던 사정을 합하면 회사 차원의 사기와 관련한 주관적 인식·의도(fraudulent corporate state of mind)가 인정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으나, 법원은 그러한 인식의 합산(aggregation of knowledge)을 허용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이 사건 SPA에 없는 이상 여러 사람의 인식을 합해 회사의 사기와 관련한 주관적 인식·의도(fraudulent corporate state of mind)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법원은 부정직한 의사를 가진 사람이 타인이 한 진술을 사실상 채택하거나 승인하는 전형적인 사안과는 달리, 한 사람은 관련 사실을 알지만 그 사실이 진술보장을 허위로 만든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진술보장의 내용은 알지만 이를 허위로 만드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계약에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영국법상 부정직성(dishonesty)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법원은 달리 정보가 허위이거나 불완전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임원들은 양측 법률자문사에서 수행하는 공개 절차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과 제공한 정보는 각 사안을 가장 잘 아는 담당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신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매도인 측 임원중 필요한 허위정보에 대한 인식과 부정직하거나 무모한 심리상태를 모두 갖춘 사람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동기가 사기의 법적 성립요건은 아니지만 행위의 부정직성을 평가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요소라고 보면서, 매도인 측이 사업에 관한 다른 불리한 정보를 은폐하려 하였다는 증거가 없었고, 임원 개개인에게 부정직하게 행동할 만한 동기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III. 시사점
1) 매수인 입장에서는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청구를 사기 또는 고의적 위법행위가 있는 경우로 한정하는 책임 제한은 가급적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제한이 적용되면 부정직성이나 무모함까지 증명하여야 하므로 실제로 청구를 인정받기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 진술보장과 관련하여 영국법상 사기가 인정되려면 한 개인이 허위진술에 대한 필요한 인식과 부정직하거나 무모한 심리상태를 모두 가져야 하고, 명시적인 계약 규정이 없는 한 여러 개인에게 분산된 인식을 합하여 회사의 사기가 성립할 수는 없습니다. 고의적 위법행위 역시 원칙적으로 한 개인이 비난받을 심리상태를 갖고 문제되는 허위 행위를 했어야 하며, 그 사람이 자신이 의무를 위반하고 있음을 알면서 이를 의도하였거나 적어도 위반 여부에 개의치 않았어야 합니다. 타인이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면서 이를 채택하거나 승인한 사람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3) 진술보장이 허위이고 공개가 불충분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사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SPA가 사기 또는 고의적 위법행위가 있는 경우에만 매도인에 대한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면, 매수인은 SPA상 요구되는 해당 심리상태를 별도로 충족해야 합니다.
4)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M&A 계약에서는 특정 개인들의 현실적 인식을 회사의 인식으로 간주하거나, 여러 개인의 인식을 합하여 회사의 인식으로 취급하는 조항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동 조항은 사업에 관한 구체적 정보는 여러 부서의 실무진이 거래문서와 진술보장에 대한 이해는 별도의 딜팀이나 경영진이 분산하여 담당하는 조직에서는 매도인이 진술보장 책임을 지도록 하는데 유용할 수 있습니다.
5) 공개 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계약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에 따라 판단됩니다. 구체적이고 중요한 사실의 공개가 요구된다면 사업상 위험에 대한 일반적이거나 모호한 언급보다는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계약에서 정한 공개 수단 밖에서 이루어진 자료제공으로는 공개의무의 흠결이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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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크리스 메인워링 테일러 외국변호사(영국), 박윤정 외국변호사(영국), 김상철 변호사